사랑과 투병 중인 가수 이씬
오도엽 『삶창』 편집위원, 르포작가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입구에 서면 이국의 낯선 거리에 온 듯하다. 세상의 온갖 이동 수단이 굴러다닌다. 지게, 수레, 자전거, 오토바이…. 그 생김새도 가지가지고, 쓰임새도 기발하다 못해 혀를 내두르게 한다. 1960년대 산업화 시절과 2012년 스마트 시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곳에 서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금요일 늦은 2시.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입구 앞 버들다리. 중절모에 짙푸른 색이 감도는 안경을 쓴 젊은이가 녹물이 줄줄 흐르는 2인승 밴에서 앰프, 스피커, 기타를 꺼낸다. 찌그러진 상자에 하얀 종이를 입힌 모금함도 따라 나온다. 주변의 번잡하고 빠른 풍경에 홀로 느린 동작을 채색한다.
이 느려 터진 인간은 노래하는 이씬이다. 금요일마다 이곳에서 기타를 들쳐 메고 노래를 한다. 벌써 햇수로 4년째다. 비가 억수로 오거나 날이 엄청 추운 날, 그리고 늦잠을 자 일어나지 못한 날을 빼고는 어김없이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1960년대 이곳에 터를 잡은 청년 노동자 전태일 곁에서 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다가 저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인다. 노래를 하다 삑사리가 나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자신의 너절한 삶을 노래로, 이야기로 털어놓는다.
이씬의 전태일 거리공연은 119회에서 멈췄다. 날이 더워서도 비가 와서도 아니다. 물론 늦잠을 자서도 아니다. 이씬은 자신의 자취방에서 119에 실려갔다. 급성폐렴이었다. 콧구멍에 산소호흡기를 꽂고 병원에 드러누웠다. 지독스럽게도 덥던 7월 중순이었다.
이씬이 그럴 줄 알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짝사랑이 아닌 여자가 생겼다. 내가 전화를 하면 한밤중에도 튀어나오던 이씬이 내 전화를 ‘쌩까기’ 시작했다. 담배도 끊었다. 페이스북에는 여자에게 끓여 바치는 전복죽 사진이 올라왔다. 괘씸했다. 내가 찾아갈 때는 봉지 커피만 내밀더니, 전복죽이 웬 말인가. 이씬의 급성폐렴이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
이씬은 퇴원하고 전라도 함평 땅 한옥에서 요양 중이다. 잠시 서울 나들이를 왔기에 한잔했다. 난 물회를 안주로 이씬은 약을 안주 삼아, 난 소주를 이씬은 맹물을 들이켰다.
한 잔 넘어가자마자 요즘 자신의 삶 구석구석을 간섭하는 여자를 흉보며 자랑질을 한다.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미쳐버리겠다는 그의 고통스런 표정은 행복에 겨워 미치겠다는 환희와 같았다. 썩을 놈! 그래도 여자가 고마웠다. 이씬이 아프다고 전화를 걸었을 때 받아주는 사람이 되어주어서. 그 실하지 못한 놈을 살리겠다고 119를 불러 병원에 데려가 살려주어서.
병원 침실에 누워 쎈 진통제를 맞는 순간 새 노래가 쏟아졌다는 이씬, 그 필(feel)이 그의 2집에 고스란히 담겼으면 한다. 그곳에는 짝사랑이 아닌 마주한 사랑이 흐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