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조직 '충청포럼'이 이완구 국무총리 인준을 적극 도왔다는 구체적 정황이 나왔다. 충청포럼이 '낙마 반대' 내용의 플래카드를 충청 지역에 수천 장 내걸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 전 회장이 의원직까지 상실한 상태에서 비공식적으로 이 총리를 적극 지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총리의 '부패와의 전쟁' 담화 이후 첫 표적이 성 전 회장의 경남기업이 됐고, 이 총리는 검찰 수사로 어려움에 빠진 성 전 회장의 '구명 요청'을 거절했다. 이는 성 전 회장 본인으로서는 강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특히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자신을 도왔다는 점을 적극 부인하고 있는데, 이는 이 총리에 대한 성 전 회장 측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성완종, 이완구 총리 인준 적극 도와"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은 13일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완구 국무총리를 상대로 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어느 한 분의 분노에 찬 제보를 받았다"며 충청포럼이 과거 '낙마 위기'에 놓여 있던 이 총리를 적극 지원한 정황을 폭로했다. 충청포럼은 성 전 회장이 2000년 조직한 모임으로 충청 출신 정·관계 및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리는 지난 2월 '언론 외압' 파문이나 본인의 병역 의혹 등으로 '부적격' 여론이 높아지면서 인준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자 충청 지역 전역에는 '충청 총리 낙마되면 다음 총선 대선 두고보자'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대거 게시됐다.
당시 게시물에는 '소상공 자영업자 협의회', '충청지역 지도자 협의회', '바르게살기회원' 등의 명의가 적시돼 있었다. 이는 충청포럼이 '불법'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홍 의원은 설명했다.
홍 의원은 "플래카드 한 장에 한 7만원 한다고 한다"며 "5천장 이상이 충남 중심으로 게시가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단순 계산을 해 본다면 이 총리 지원에 3억5천만원 정도가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 현수막들은 충청권 여론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 전 회장 본인도 이 총리 지원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성 전 회장 측근인 이기권 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대변인은 지난 12일 빈소가 마련된 충남 아산의료원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이 총리가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며 "성 전 회장은 지역에서 자문위원회 간담회나 모임에 가서도 '이 총리 후보자가 반드시 총리가 돼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이 전 대변인은 "다른 것은 모르지만 (성 전 회장이) 정말 총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신 것은 맞다"고 강조했다.
이완구, '성완종이 총리 인준 도왔다' 지적에 "전혀 모른다" 극구 부인
그러나 이완구 총리는 대정부질문에서 '성완종 전 회장이 인준을 도왔다'는 지적이 나오자 "전혀 모른다"고 거듭 부정했다. 본인이 성 전 회장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이 총리는 "성완종 전 회장을 비롯한 충청포럼의 많은 분들이 총리 인준을 위해 노력을 했다, 이것은 알고 있지 않느냐"는 홍영표 의원의 질문에 "플래카드 관련해서 충청포럼에 전화한 적도 없고, 성완종 전 회장과 전화한 적도 없다"며 "필요하다면 제 휴대폰을 제출하겠다"고 맞섰다.
또 플래카드가 대거 게시된 데 대해선 "자발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또 한편으로는 충청포럼과의 연관성을 거듭 부인했다. 이 총리는 "충청포럼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실체가 조직화된 조직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저와는 전혀 연결이 없는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플래카드 건에 대해 "수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1년 정도 의정활동을 함께 한 사이" 정도라며 긴밀한 친분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이 총리의 이 같은 반응이 성 전 회장 측의 감정을 악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완구, 성완종 '구명 요청' 받았으나 '거절'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유에 대해 자신에 대한 성 전 회장의 "섭섭함"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총리는 대정부질문에서 "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총리 담화와 압수수색에 인과관계가 있지 않겠나, 플러스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조금 도움을 청했는데 제가 법과 원칙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본인이 좀 섭섭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경남기업 압수수색(3월 18일)이 진행된 지 6일쯤 경과한 지난 3월 22일 성 전 회장으로부터 '구명 요청'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고인으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았다"고 표현했다.
이 총리는 당시 "개별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니 억울한 점이 있으면 검찰에 가서 상세히 말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성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날인 지난 8일 이용희 태안군의회 부의장 등 지역 인사 2명을 약 한 시간 동안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성 전 회장은 "이완구를…이완구를…어떻게…"라며 이 총리의 이름을 수차례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이 총리는 이용희 부의장 등 관계자들에게 모두 15차례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캐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성 전 회장 측근에 따르면 이 총리는 대화 내용을 추궁하면서 "5천만 국민이 시끄럽다. 내가 총리다. 나에게 얘기하라"는 식으로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이는 '위협' 또는 '입막음' 시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이 총리는 전화통화를 한 사실은 시인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이용희 부의장과) 친분이 있어 어떤 말을 했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위협이나 입막음 시도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다만 당시 통화가 다소 적절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완구, '사퇴 요구' 거부…'검찰수사는 받겠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은 '리스트'에 오른 이 총리가 사퇴한 뒤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한 나라의 총리가 메모에 연유도 모르는 이름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사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이를 거부했다.
새정치연합 정청래 의원은 "총리는 법무부 장관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수사를 지휘하고 조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직에서 사퇴하고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잠시 총리직을 중지하고 떳떳하게 검찰 수사를 받아 무죄를 입증하고 다시 총리직을 수행할 배포가 없느냐"고 압박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자신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맞섰다.
다만 이 총리는 검찰 수사는 받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의 소환 요청이 있으면 응할 것이냐"는 정 의원의 질문에 "당연하다"며 "총리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수사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