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

그 바다에서 벌어진 참사 이후의 참사

참된 2014. 11. 22. 03:36

문화

영화·애니

그 바다에서 벌어진 참사 이후의 참사

등록 : 2014.11.04 15:55    한겨레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영화 <다이빙벨>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들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번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10월23일 개봉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인명 구조를 위한 다이빙벨 투입 과정을 둘러싼 보름간의 기록이다. 어찌 보면 <다이빙벨>은 세월호에 대한 단편적이고 또 지극히 일부분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를 발판삼아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진실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서길 진심으로 바라며 짧은 기획을 준비했다. 김소연 시인, 변성찬 영화평론가, 태준식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다이빙벨>에 관한 글을 부탁했다. 팽목항 현장에서 누구보다 먼저 세월호를 기록해온 이상호 기자의 인터뷰도 덧붙였다. 세월호가 여전히 바다 속에 있는 한 세월호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돼야 한다. 글 : 씨네21 취재팀
슬픔으로 분노하라
글 : 김소연 시인
망각의 시점에 찾아온 영화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지난 4월16일부터 분노심과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온갖 통각이 날을 세워 편안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더러 편안한 날이 찾아왔고 더러 친구들과 낄낄대며 가벼운 수다를 떠는 날이 찾아왔다. 더러 4월16일을 잊게 되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느냐는 진심도, 반드시 기억하리란 각오도, 시간이 약이 된다는 진리에 무릎을 꿇어갔고 이에 대해 굴욕감이 찾아왔다. 그런 때에 <다이빙벨>을 보았다. 통각이 다시 날을 세워, 분노와 수치와 죄책을 회복할 수 있기를 다만 기대했다. 영화가 끝나자 박수조차 시원하게 칠 수 없었다. 통각이 일제히 다시 솟구쳐올랐고 더 세차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박수는 뜨겁지 않았지만 눈물은 뜨거웠다. 통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망각이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이런 영화가 우리 앞에 나타나주어서, 고마웠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영화의 의도일 리는 없겠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했다. 해경과 정부와 언론은 짐작보다 더 무능하고 짐작보다 더 교활했다. 해경은 아이들을 구하려는 의지보다 자신들의 무능이 들켜서는 안 된다는 의지에 더 필사적이었다. 들켜서는 안 되는 무능을 감추는 일에 가장 유능했다. 무능과 유능이 국민의 안전과 완전히 정반대로 발휘되고 있었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의지는 볼품없이 무너져야 했고 무너졌다. ‘다이빙벨’이라는 장비는 이 거대한 참사 앞에서 볼품없이 무너진 많은 것들 중 하나였다. 영화 <다이빙벨>은 ‘다이빙벨’이라는 장비를 바로 그러한 상징으로 활용했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다이빙벨이 과연 구조에 도움을 줄 만한 획기적인 장비였는가’를 입증할 기회조차 얻질 못했고,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해경은 치밀했다. 방해와 은폐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치밀함이 가능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려는 게 목적이었던 이종인•이상호팀은 증거 포착에 안배를 할 겨를도 없었다. 영화가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액면 그대로의 이 진실만으로도 실은 충분했다. 구조와 관련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싶었던 실종자 가족들 편에 누가 서 있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경과 언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신랄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이빙벨은 실패를 하여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철수하기 이전에 발빠르게 그랬다. 실패를 기다린 듯이 그랬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구조에 무능하고 은폐에 유능한 해경, 책임에 무능하고 감시에 유능한 정부, 진실에 무능하고 날조에 유능한 언론. 이 셋은 공통점이 있었다. 국민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 <다이빙벨>은 우리가 진실을 위해 싸워야 할 장벽이 얼마나 단단하고 높고 교활한지를 보여주지만, 승묵 아버지의 후회에 찬 울먹임을 마지막 장면으로 제시했다. 관객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우리 안에 도사린 커다란 후회가 승묵 아버지의 후회와 해후하여 흘리는 눈물이었다. 사진작가 노순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능한 풍경’의 가장 사악한 ‘뱀’. 이 역할을 국가와 언론이 도맡고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목격하고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일은 결코 무능이 아니다. <다이빙벨>을 보고 난 뒤 더 막막한 현실과 더 신랄하게 마주해야 하는 일도 그럴 것이다. 시인 허수경이 오래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고함
글 : 변성찬 영화평론가
고립된 현장의 진짜 모습을 담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 발생 후 보름 동안 있었던, ‘다이빙벨’ 투입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황과 논란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의 이상호 기자와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 투입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그 과정을 철저하게 두 당사자(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의 시선과 입장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굳이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와 수사는 지극히 논쟁적이다. 그것을 주관적이거나 일방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관성과 감정은 당시 현장에서 어떤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하여 절망하고 분노했던 사람들의 그것이고, 지금까지 세월호 유가족들이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 현장은 고립의 현장이었다. 희생자들은 절대 고립 속에서 죽거나 실종되었고, 정부의 구조 의지와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희생자 가족들은 고립감 속에서 슬픔을 분노로 바꾸어야만 했으며,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애썼던 사람들은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좌절해야만 했다. 영화 속 이상호 기자는 두번에 걸쳐 그 ‘고립’에 대해서 말한다. 참사 발생 9일째에 있었던 가족대책본부와 해양수산부 장관 및 해양경찰청장과의 첫 대화 자리를 생중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가족들이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가족들의 요구와 해경청장의 요청으로 다시 내려와서 현장으로 가고 있는 이종인 대표에게 “제일 위험한 게 대표님이 거기서 고립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당시 언론은 거의 24시간 내내 참사 현장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었고, 전 국민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많은 카메라와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느낄 수밖에 없는 고립감이라니, 참으로 이상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방송을 통해서만 참사 현장을 보았던 나는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는 말인가? 가족의 죽음 앞에서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던 희생자 가족들이 절망과 분노 속에서 했던 첫 시위의 구호가 “언론은 각성하라!”였다. <다이빙벨>은 ‘언론에 대한 영화’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주류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적폐’ 중의 하나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적폐’란 오로지 경제성장이라는 목표 하나로 달려온 이 사회의 주류 논리의 필연적인 귀결이고, 그 논리가 낳은 “사람과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의 필연적인 산물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적폐’의 산물인데, 이번 참사를 계기로 그 ‘적폐’를 일소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보였던 정부가 어느 순간부터 “민생이 우선”이라며 더이상 세월호 문제에 발목을 잡히지 말자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요구는, 그것이 진정으로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얽힌 사실과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판단은 결코 주관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참사 발생 6개월 만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느끼는 고립감과 절망과 분노는 더 깊어지고 있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단, 양심의 부력으로 여러분이 함께해주셔야만 합니다.” <다이빙벨>의 마지막 말이다. 이 ‘양심’에 대한 호소는 모든 ‘계산’을 멈추자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성장 논리에 발목을 잡혀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애타는 호소일 것이다.
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기 위해
글 : 태준식 다큐멘터리 감독
가라앉은 진실을 건져올릴 첫 번째 작업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세월호 참사는 ‘몰락’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보여준 사건이다. 사건 이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국가’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방해하는 ‘권력’이 그려낸 또렷한 사실은 이 ‘몰락’이 단지 4월16일에만 멈춰 있지 않은 현재진행형 ‘악몽’임을 또한 확인시킨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반복되어오던 불안한 질문의 끝이 결국 이런 파국으로 실현되다니, 이 공동체에 대한 깊은 절망에 한동안 ‘세월’이라는 단어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든 이 ‘악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절망의 실체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됐다. 특히나 기울어진 배가 바닷속으로 거칠게 빨려들어가고 결국 애절하게 떠 있던 배의 끝부분까지 허망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실시간 HD 방송으로 목도한 사람들의 충격은 저 차가운 TV화면과는 다른 영상, 즉 ‘진실’에 근접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절실한 기대로 이어졌다. <다이빙벨>은 그렇게 ‘악몽’과도 같은 격한 현실이 빚어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영화’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은 4월16일 참사 이후 다이빙벨이라는 수중장비의 3번에 걸친 투입과 철수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팽목항에서 상주하고 있던 이상호 기자는 다이빙벨 투입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종횡무진 팽목항을 누비며 때로는 사건에 개입해 갈등을 촉발시키기도 하고 다이빙벨의 주인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증언을 실어나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연대기의 사이사이 ‘국가’의 무능, 영혼 없이 춤추는 ‘언론’의 생얼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다이빙벨>에서는 투입과정에서 드러난 국가권력의 부조리가 구체적이며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신뢰에 기댄 전략은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현장 촬영의 한계와 여전히 실종자 10명이 존재하는 엄숙한 현실이 ‘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리라. 하지만 문제제기 방식의 옳고 그름의 판결이나 표현전략의 왜소성보다 투입과 철수, 이 전투 한가운데에서도 ‘국가’와 ‘언론’에 대한 분노의 공기를 놓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의지는 <다이빙벨> 속에 남아 있다.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감자를 쥐고 과감하게 껍질을 까기 시작하려 했던 <다이빙벨>의 용기는 ‘국가’와 ‘언론’ , 특히 쓰레기가 된 ‘언론’의 현실을 통타하면서 빛을 발한다. 팽목항 어디에서도 ‘기자’는 환영받지 못했고 의 카메라 또한 유가족들에겐 똑같은 경계의 대상이 됐던 현실 속에서 말이다. 캐릭터의 기둥을 받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분명 많은 이들에게 현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근거로서 작동할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나.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사건이 더욱 빠른 주기로 속절없이 등장하는 이곳에서 <다이빙벨>은 자의든 타의든 첫 번째 다큐멘터리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하지만 수준 낮은 ‘권력’의 딴죽은 다이빙벨 투입 성공과 실패 논란으로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품고 있는 다양한 결들을 단순하게 정리시켜버렸다. 덩달아 <다이빙벨>은 ‘진실’의 수호자라는 과도한 기대를 받으며 방향과 의도는 잊히고 어느 순간 관객 앞에 고귀해져버린 ‘진실’만이 ‘소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이것이 <다이빙벨>을 읽어내는 제대로 된 모습일까? 때때로 사회적 관계들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한가운데에 다큐멘터리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일지 모른다. 감내해야 할 역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휘발성 강한 분노를 유도하는 ‘국가권력’의 저질스런 전략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 우리 스스로 ‘진실’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다이빙벨>을 빨리 잊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늘고 길게 이 문제를 반복적으로 되새김함으로써 책임지려 하지 않는 저들의 출구전략을 깨버리는 데 다큐멘터리영화에 대한 기대를 거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세월호 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영화가 적어도 2, 3편은 제작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욱 많은 작품들이 ‘온당한 질문’을 할 것이다. ‘진실’을 향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국가와 권력이 행했던 무능과 무책임의 끝판이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지속 가능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질문이 담긴 작품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참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매우 슬픈 현실이지만 다큐멘터리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노력과 성과는 어찌 보면 지금부터라 할 수 있다. <다이빙벨>은 첫 주자로서 나선 작품이다. <다이빙벨>과 그 이후 바통을 이어받을 다른 다큐멘터리영화를 위해 제대로 달릴 수 있는 반듯한 선을 그어줘야 한다. 격한 ‘악몽’의 한가운데에 있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세월호 얘기 그만하라는 사람이야말로 영화 꼭 봐달라” <다이빙벨> 이상호 감독 인터뷰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제작부터 상영까지 모든 단계에서 외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이 영화는 결국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언론인 이상호의 진심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종인 대표가 워낙 여론의 난타를 당했고, 나 역시 이른바 영리에 눈멀어 팽목항을 찾은 업자의 소개자가 된 형국이었기에 사람들이 온전히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그들의 진정성은 영화 속 두 남자의 눈물이 잘 말해준다. 한편으로 이상호 감독은 “영화 제작을 방해받았다는 사실보다도 가치가 전도되는 상황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과 진실을 찾아 헤매는 일이 업이라 소설과 영화는 잘 보게 되지 않는다던 이상호 감독은 생각보다 더 뜨거운 가슴을 지닌 기자였다. -팽목항에 있을 당시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몸 상태는 좀 어떤가. = 화병이다. 인터넷 매체() 하면서 잠 못 자고 1인 다역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뇌가 정지하더라. 지난해 11월에 처음 쓰러지고선 바보처럼 두어달 누워 지냈다. 올해 3월부터 살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4월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처음 하루이틀은 멍하니 지켜보다가 도저히 서울에 있을 수 없어 사흘째 되던 날 팽목항에 내려갔다. 거기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디서도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주는 곳이 없었으니. 하루에도 여러 개의 기사를 쓰고, 트위터로 상황을 수백번 알리고, 방송을 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나니 또 말이 안 나오더라. -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6개월 만에 영화가 개봉한다. 처음부터 빨리 완성해 이른 시일 안에 개봉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국가는 실종됐다. 보신주의에 연연하는 관료만 존재했고 물지 않는 감시견만 있었다. 거짓말 하나는 거짓말 두개를 낳는다. 두개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통해 그 존재를 보호받는다. 총체적 거짓말은 결국 진실을 공격한다. 일단 다른 사안보다 더 철저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정당한 요구를 하는 유가족들이 시간이 지나면 폭도로 매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플랜을 가진 정부가 없고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이 없으니 유가족들이 직접 나서서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조명탄을 쏴달라, 바지선을 옆에 대달라, 크레인으로 떠받쳐달라…. 유족들이 하자는 대로 했으니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유족들한테 책임을 떠넘기겠구나 싶더라. 그분들의 억울함을 덜어주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있는 그대로 상황을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분들은 6개월 만에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너무 성급한 판단 아니냐고 하는데, 6개월이란 시간이 유족들한테 얼마나 긴 시간인지 옆에서 지켜봤기에 안다.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동시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안해룡 감독과는 어떻게 공동연출을 하게 됐나. = 영화를 만들기로 한 건 사건이 있고서 한두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사건 초기에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진실을 찾으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타기, 마타도어가 생겨났다. 책임의 화살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국민의 분노를 관리하려 들었고, 국민적 이슈가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재구성됐다. 그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편적 팩트를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이야기로 구성할 필요를 느꼈다. 그런데 혼자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함께 작업을 붙잡고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여러 감독들을 접촉했고, 마침 세월호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안해룡 감독을 만났다. - 다이빙벨과 이종인 대표에 집중해 세월호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 얼마 전 시인 고은 선생님을 뵀다. 와인을 한잔 따라 드리면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라고 여쭈었더니 “술 한 잔 주고 세월호를 이야기하라는 거냐”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시더라. 고은 선생님은 한동안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세월호가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배 안에서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랐다가 죽어간 아이들 생각에, 학살을 방치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아직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거다. 공지영 작가 역시 <다이빙벨>의 예고편을 보고는 밤새 잠 못 이루고 울었다고 하더라. 기자인 나 역시 감당하기 벅찬 현실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는 해야 했다. 영화감독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의 아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건 도저히 이 시점에서 다룰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다이빙벨을 취재했으니, 다이빙벨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들여다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 영화는 ‘다이빙벨만이 답이었다’는 이종인 대표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종인 대표의 이야기에 크게 의존하면서 주장의 근거가 다각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 영화엔 이종인 대표의 진술만이 아니라 취재팀이 확보한 영상들이 있다. 그 영상만으로도 이야기 구성은 가능하다. 영화의 편파성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오히려 다이빙벨 투입은 실패였다고 믿는 분들이 편파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본다. 그들의 판단의 근거, 인식의 근거는 대부분 구조 현장에 가지 않고 쓰인 기사들이다. 그들이 영화를 봐야만 비로소 정반합의 사고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왜 이종인씨만 인터뷰했냐, 해경도 인터뷰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들도 있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게 이미 해경의 입장이다. 구조, 하느라 했는데 조류 때문에 못했고, 다이빙벨은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투입 안 했고, 다이빙벨 때문에 구조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해경의 브리핑 내용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특파원 힌츠페터가 5·18을 보도했을 때도 왜 피해자들의 절규만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을 인터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보도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판단했으면 한다. -정부의 무능은 물론이고 언론의 무능 및 무책임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한다. 팽목항에서 언론의 위기를 보았나. = 정부는 골든타임 72시간 동안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었다. 왜 마스터플랜이 없냐고 묻는 게 언론이 할 일이다. 그런데 어땠나.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의 거짓말을 감시하는 게 언론의 기본인데 앵무새처럼 정부가 하는 얘기를 그대로 들려줬다. 또 황당했던 건 팽목항에 기자가 1500명이나 있었는데 아무도 구조 주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팽목항에 가자마자 경찰에 물었다. 누가 지금 구조하고 있냐고. 언딘이라더라. 그러면 언딘이 어떤 회사인지 알아봐야 하잖나. 언딘이 어떤 회사인지, 왜 수의계약을 했는지, 그 절차는 정당했는지. 그런데 ‘국내 최고의 심해 잠수 전문 업체인데 열심히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만 하고 있다. 정부의 총체적 거짓말, 언론의 총체적 무관심과 해태를 보았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기자들이 말로 이종인 대표를 난도질하는 장면은 특히 가슴 아팠다. =이종인이란 캐릭터를 이해하면 더 많은 이야기가 보일 거다. 그분은 말을 꼭 꺾어서 한다. 반어법을 구사한다. “왜 그냥 가세요?” “정부가 잘하고 있잖아.” 이런 식이다. 그는 반정부 인사도 아니고 친여 성향의 보수적인 업자, 나약한 업자다. 그런 그가 단지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려고 제 돈 들여 팽목항에 갔다. 열악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개 같은 상황을 고발하고 있는데 언론이라면 귀기울여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영업하는 사람이지. 돈 벌려고. 나야 여기 있으면 좋지. 그런데 여기 있으면 (구조에) 도움이 안 되니까 가는 거야”라고 그가 말하자 “나는 영업하는 사람이지. 돈 벌려고” 라는 말만 떼서 공격하는 <조선일보>식 잣대가 현재의 프레임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 사회가 말이 되는 사회인가. 나는 한 사람의 진실이 세상의 진실과 통한다고 믿는다. 세상을 밝히려면 내가 선 자리에서 나부터 촛불을 켜는 수밖에 없다. 순간적으로 전체가 환하게 밝아지진 않는다. 내가 밝힌 촛불이 번져나갔을 때 이 세상도 밝아진다. 이 영화가 세월호의 모든 진실 혹은 세월호의 모든 거짓을 고발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이 작은 영화 한편이 세월호의 모든 진실 혹은 모든 거짓을 고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또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이 영화에 무관심했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유가족도 일부 있었다. 그들이 영화를 보고선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공유됐으면 좋겠고 나아가 영화를 더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비겁하게 답했냐면 “<다이빙벨>을 본 국민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더 듣기 원한다면,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는 있다”라고 답했다. 지금으로선 그런 마음이다. 일단 이 영화가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세월호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세월호 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꼭 봐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세월호 이야기가 얼마나 조작되고 왜곡됐는지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다이빙벨>은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거기 우리의 이야기가 있으니, 어려워 말고 이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글 : 이주현 | 사진 : 백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