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

[세상 읽기] 감옥에 갇힌 영화인 양윤모 선생의 꿈 / 김중미(2014.2.12)

참된 2014. 6. 7. 18:30

[세상 읽기] 감옥에 갇힌 영화인 양윤모 선생의 꿈 / 김중미

등록 : 2014.02.12 19:00     한겨레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지난해 12월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첫 사면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설 특사에 제주 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주민이나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이 포함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설을 앞두고 정부가 발표한 명단에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도, 밀양 송전탑 주민도 없었다. 정부의 언론 발표를 보면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리 연루 정치인·기업인, 성폭력·살인·강도 등 반인륜적 범죄자들은 이번 사면에서 제외됐다. 그렇다면 정부는 두 지역의 주민을 반인륜적 범죄자로 보는 것일까?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데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노동자 70여명이 뇌졸중·백혈병·재생불량성빈혈 등에 걸려 숨진 삼성, 24명의 노동자가 죽어간 쌍용자동차 같은 기업과 국민의 혈세 수십조를 거대한 저수지와 인적 없는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데 쓴 전직 대통령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 이 정부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를 분별하는 능력이 없다.

지난 설 연휴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다 네 번째로 구속된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이 구속된 지 1년이 되는 때였다.

양윤모, 그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온몸을 바쳤다. 중덕해안가 구럼비 바위에 사는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를 지키기 위해, 3만년이 된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400년 동안 이어온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을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네 번이나 구속 수감이 되었고 세 번이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였다.

2011년 4월 초 강정마을 관련 인터넷 카페에 동영상이 올라왔다. 양윤모 선생이 공사 저지를 위해 자동차 밑에 있다가 사복경찰들에 의해 바지가 벗겨진 채 팬티 바람으로 끌어올려져 폭행을 당하며 연행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강정의 폭력적인 상황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다. 그 뒤 ‘개척자들’의 송강호 박사, 평화활동가이며 그림 작가인 최승희 선생의 구속이 이어지고, 문정현 신부와 여러 사제, 수도자, 평화활동가의 힘이 보태지면서 강정 주민들의 외로운 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세상에 알려졌다.

2011년 여름, 감옥에서 풀려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양윤모 선생을 처음 만났다. 오랜 단식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 보였으나 눈빛은 빛났으며 미소는 온화했다. 그는 강정 주민들이나 활동가, 강정을 방문한 이들을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말할 때는 단호하고 완강했다.

양윤모 선생은 언젠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평론가인 제가 미래의 재앙에 대해 침묵한다면 전 평론가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했다. 해군과 정부가 강정 주민들의 땅과 바다를 강탈하는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이었다는 것을 안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 지난해 여름 제주 평화대행진에 참여했던 영화 <플래툰> 등을 제작한 미국 영화감독 윌리엄 올리버 스톤도 양윤모 선생을 면회하며 그의 투쟁을 지지했다.

지난 7년간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구속자 25명을 포함해 539명에 이른다. 그중 204명이 실형을 받고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확정판결 받았다. 쌓인 벌금만 5억원이 넘는다.

오늘도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평화 미사를 드리고 백배 기도와 1인시위를 이어간다. 아직은 해군기지가 백지화된 강정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영화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양윤모 선생의 소박한 꿈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죄 없이 범죄자가 된 주민과 활동가들의 투쟁과 헌신이 평화로 열매 맺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