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지우고 연대의 힘으로 함께 싸우는 공동투쟁단
[오늘, 우리의 투쟁] 2014년, 투쟁은 계속된다(1)
신순영(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4.01.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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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참세상’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우리가 ‘희망’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309일 크레인 농성은, 외환위기 이후 자리 잡은 정리해고와 고도화되고 다변화된 현장 통제로 침잠해있던 노동운동의 위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노동자 투쟁에 대한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수차례의 희망버스가 부산 영도로 향했고, 비록 강제력 없는 사회적 합의라는 미봉책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은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여전히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노동의 힘은 미약하지만, 희망버스는 우리 스스로가 벽을 허물고 함께 싸울 때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일깨웠고 이후 이어진 수많은 ‘희망’ 투쟁의 밑불이 되었다.
그리고 2012년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 열흘 이상의 도보투쟁 희망뚜벅이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을 출발해 서울과 경기 지역의 투쟁사업장들을 꼼꼼히 만나고 아산의 유성기업과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 향하는 대장정이었다. 희망뚜벅이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경찰의 철벽 봉쇄가 잇달았지만, 지지부진하게 수년씩 이어지는 투쟁으로 조금은 위축되고 외로웠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뭉쳐 발산하는 힘은 스스로를 놀라게 할 만큼 활기차게 이어졌다. 2009년 옥쇄파업 이후 안간힘을 다해 싸워온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연대하는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공장 앞에 희망텐트를 치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끝물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봄의 길목에서는, 희망뚜벅이의 여세를 몰아 정리해고와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서울시청광장 한 켠에 희망광장을 열었다.
▲ 2012년 2월 희망뚜벅이 도보투쟁 ⓒ故윤주형
2011년 희망버스로부터, 어쩌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목숨 걸고 알려낸 기륭전자 투쟁과 함께했던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로부터 시작된 자생적인 공동투쟁의 흐름은 마침내 2012년 여름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출범으로 이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싸움, 너무나 부당하고 억울해 접을 수도 없지만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 듯 보였던 싸움들을 지난하게 이어가던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며 손을 맞잡았다. 너와 내가 당하는 노동탄압의 본질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으로 투쟁으로 웅변하며 ‘길 그 끝에 서서’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공동투쟁단의 출범, ‘위풍당당’ 거리의 노동자들
2012년 7월,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이 출범했다. 스무 명이 넘는 가족과 동료들의 생목숨을 앗아간 정리해고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십 년의 불법파견과 대법 확정판결에도 꿈쩍 않는 자본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는 비정규직의 고통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아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전방위적인 노동탄압이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투쟁 속에서 뼈아프게 깨달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였다. 코오롱정투위, 쌍용자동차지부, 콜트·콜텍지회, 대우자판지회, K2지회, 재능교육지부, 기아자동차해복투,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지부,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베링거인겔하임지부, 한국쓰리엠지회,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유성기업지회, KEC지회, JW지회, 영남대의료원지부와 전해투 그리고 다양한 연대단위 동지들이 함께였다.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은, 상급의 지침에만 의존해왔던 틀에 박힌 시기 중심 일회성 공동투쟁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조금은 형식적이고 지지부진했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공동투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산별로 모이고 이슈별로 나뉘어 투쟁하는 데에 익숙했던 노동자들에게 부문과 조직을 넘나드는 공동투쟁은 낯선 것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스스로도 구분 지어왔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싸우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고, 처음의 생경함이 친숙함으로 변하는 만큼 공동투쟁단은 단단해졌다. 내 문제로 시작한 싸움이지만 온전히 주체가 되지는 못했던 싸움을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공동투쟁은 활력을 더해갔다.
▲ 공동투쟁단 웹자보
2012년 공동투쟁단은 매주 한 차례씩 오전에는 한 사업장에 집중해 투쟁하고 오후에는 정부종합청사와 새누리당, 국회 등 상징적인 장소에서 정리해고·비정규직·노동탄압 문제를 이슈화하고 저녁에는 대한문 문화제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동투쟁을 정례화하고 본격화했다. 공동투쟁단 대표자회의를 통해 집중투쟁 사업장을 결정했고, 그 기준은 절박함과 필요성에 대한 모두의 공감이었다. 오전에 시작한 투쟁이 현장 상황에 따라 오후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급박한 경우 밤샘 노숙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공동투쟁이 진행될수록 기존의 관성을 버리고 투쟁의 주체로 거듭난 동지들은 기꺼이 즐겁게 함께 했다. 또 매주 함께하는 집회로 식상해진 투쟁발언을 대신해 시도했던 집체극은 대한문 문화제는 물론 2012년 비정규노동자대회와 울산 현대차 포위의날 집회에서까지 재공연을 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대한문에서, 새누리당 앞에서, 서초동 JW사옥 앞에서, 성수동 K2코리아 본사 앞에서, 부평 콜트공장에서, 창조컨설팅 앞에서... 도처에서 공동투쟁단은 계산 없이 타협 없이 싸웠다. 많아야 백 명 남짓, 그보다 적을 때가 더 많은 공동투쟁단의 집회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간절함과 분노가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였고, 그런 만큼 경찰은 긴장했다. ‘제대로’ 함께 싸우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공동투쟁단은 더욱 끈끈해졌고, 외연은 조금씩 더 넓어졌다. 용산을 만나고 저 멀리 제주 강정과 밀양을 만나고, 가까이 또 멀리 있었던 장애 동지들과도 만났다. 이렇게 자본독재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고 함께 싸우며 공동투쟁단은 2013년을 맞았다.
▲ 공동투쟁단 2012년 송년회 ⓒ윤경민
동지들의 죽음, 변하지 않는 현실, 그러나 투쟁은 계속된다
하지만 2013년은 무겁게 시작되었다. 연초부터 2012년 대선 결과와 이후의 현실을 비관한 노동자들이 목숨을 버리는 비극이 이어졌다. 특히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공동투쟁단 출범부터 함께해온 기아차해복투 윤주형 동지의 자결이었다. 힘겨운 해고 생활에도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현장을 누비던 동지의 죽음과 장례를 둘러싼 참담한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와 온전한 삶을 되찾기 위해 함께 싸워온 많은 동지들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늘 먼저 웃고 먼저 손 내밀었던 윤주형 동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추운 겨울 마석 모란공원에서 영면에 든 청년노동자 윤주형을 마음에 묻으며 공동투쟁단은 첫 번째 봄을 맞았다.
각자의 싸움만도 버거운 투쟁사업장들이 의기투합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연대의 힘으로 세우고 일 년을 지켜온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천막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고 분향소 재설치를 위한 각계각층의 연대와 투쟁이 계속됐지만 공권력은 난데없는 화단으로 노동과 삶을 다시 한 번 짓밟으며 저항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대한문에서, 양재동에서, 아산굴다리에서, 울산철탑에서... 전국 도처에서 일상이 된 투쟁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공동투쟁을 시작하고 해를 넘기는 동안 현대차비정규직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공무원회복투, 스타케미컬해복투 등의 투쟁사업장들이 합류했고, 이심전심의 동지애로 서로를 북돋우며 변함없는 싸움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현대차비정규직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사무국장의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비보가 전해졌다. 대법원의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이행하라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3지회가 75일간의 양재동 노숙농성을 마무리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함께 싸우던 동지들을 하나 둘 아프게 떠나보내면서도, 자신의 슬픔을 추스르기에 앞서 곁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을 돌아보고 위로하며 다시 살아나갈 안간힘을 짜내야만 하는 일이 어느덧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일상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 싸움을 선택한 노동자들이 물러설 곳은 없었다. 우리로 뭉친 만큼 더 깊은 슬픔과 더 벅찬 기쁨들에 울고 웃으며 오늘도 묵묵히 싸움을 이어간다.
투쟁으로 앞당길 정리해고·비정규직·노동탄압 없는 세상을 향해
시작한 지 몇 개월부터 어느덧 십 년을 바라보는 투쟁까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수의 인원부터 보기만 해도 든든한 수십 명의 조합원이 포진한 투쟁까지, 함께하는 투쟁사업장의 규모도 사정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1년 반 동안 우여곡절과 희노애락 속에 함께 한 공동투쟁은, 너와 나의 싸움이 별개가 아니며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구호가 아닌 당위로 만들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민주노조 탄압으로 부당해고된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 해고자 동지가 투쟁에 승리해 복직했고, 창조컨설팅을 동원한 노조파괴에 맞서 586일의 고통스런 최장기 파업을 이어간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동지들이 현장으로 돌아갔다. 유례없는 결합력으로 묵묵히 이어온 공동투쟁의 성과치고는 소박한,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싸웠기에 가능했던 값진 승리였다.
그러나 코오롱정투위, 쌍용자동차지부, 콜트·콜텍지회, 대우자판지회, K2지회, 재능교육지부, 기아자동차해복투,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지부,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베링거인겔하임지부, 한국쓰리엠지회,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유성기업지회, KEC지회, JW지회, 영남대의료원지부와 전해투 그리고 현대차비정규직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공무원회복투, 스타케미컬해복투. 공동투쟁단으로 함께하는 투쟁사업장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1년 반 전과 마찬가지로 투쟁의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불과 십오 년 전에는 없었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행사하려면 해고와 구속은 물론 손배와 가압류를 각오해야 하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일상이 되었고 장기투쟁사업장의 존재는 일상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절박하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희망이다’ 외치며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우리는 사라져버린 권리들을 되찾기 위한 싸움에 언제든지 함께 나설 수 있다. 수도 없이 깨지고 몇 년째 제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침잠하고 때로는 숨을 고르며 공동투쟁단은 오늘도 싸운다. 함께 싸워 함께 이기기 위해 그리하여 함께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앞에 선 동지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맞잡은 손의 온기와 든든한 연대의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 공동투쟁단 국회앞 투쟁. 코오롱정투위 최일배 위원장과 2013년 8월투쟁 승리로 복직한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지부 김은석 조합원 ⓒjum.jomb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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