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규의 노동여지도]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정규직이여~
한진중공업 영도공장이 활기를 찾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 부산항에 돌아올 노동자는 그리운 정규직이 아닌 하청노동자들뿐이다.
“우리 부산에서 한진이 젤로 크고 존 회사 아입니꺼? 올해 배 수주도 마이 했다 하이까 더 좋아질 끼라예.”
부산대교를 건너 한진중공업이 보이기 시작하자, 택시기사님이 자랑스레 얘기하신다. 정문 앞에 이르자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시선을 붙잡는다. 회사는 ‘22년 연속 세계 최우수 선박 건조사’라고 자랑한다. 부산항에 조선소가 들어선 것은 1937년.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문을 연 대한조선공사의 옛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부산 사람들의 마음이다.
한진중공업은 부산의 상징이다. 지금은 부산은행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2008년까지 한진은 부산의 1등 기업이었다. 외환위기 때도 한진은 끄떡없었다. 도리어 환차익으로 돈방석에 앉았다. 5년치 배를 수주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2008년까지 많은 돈을 벌었다. 부산에서 번 돈으로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만 1조3000억원이 넘는다.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조업현장. | 연합뉴스
2008년까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와 다대포, 울산공장에는 하청노동자까지 포함해 7000명이 넘는 생산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부산항에 있는 한진중공업 연구개발(R&D)센터는 설계를 하는 젊은 사무직 노동자들로 활기가 넘쳐흘렀다.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한진중공업노조는 정규직 노조에 하청노동자들을 가입시키는 ‘1사 1노조’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필요한 추가인력 하청노동자 채용 계획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유럽까지 강타하면서 한진중공업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회사는 울산공장을 팔고 하청노동자들을 내쫓았으며 직영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3000명이 넘는 용접공들이 조선소가 몰려 있는 거제와 울산으로 떠났다.
2010년 1월 6일 대한조선공사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전 노조지회장이 올라가 목을 맸던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김진숙을 살려야 한다며 6월 11일 첫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달려와 공장 담장을 넘었다. 그해 내내 희망버스는 부산을 뜨겁게 달궜고,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야 했다. 마침내 정리해고를 철회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면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309일 만에 살아 내려왔다.
4년 전 손쉽게 넘을 수 있었던 얕은 담장이 교도소 담벼락보다 높아졌다. 노조사무실이 공장 안에 있지만 회사는 국회의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복수노조가 만들어졌고, 민주노조는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김진숙과 함께 크레인에 올랐던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2010년의 기억을 잊고 싶었는지 회사가 85호 크레인도 철거해버렸다”고 말한다.
우울하던 공장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영도공장 4개의 도크에는 부경대 실습선, 해경 구조선, 전투함 등 7척의 배가 건조되고 있다. 지난해 특수선 15척과 올해 컨테이너선 2척을 수주해 2016년까지 17척의 배를 만든다. “한진중공업이 살아야 부산의 조선 경기가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나면서 부산 경제가 활성화된다”며 부산시장과 국회의원들이 한진중공업을 지원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휴업 중인 노동자 350명이 공장으로 돌아왔고, 내년 1월이면 모두가 현장에 복귀할 예정이다. 수주받은 배를 만들려면 250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한데 직영노동자는 750명뿐이다. 회사가 좋아지고 인력이 필요하지만 정규직은 안 뽑는다. 회사는 앞으로 100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을 데려다 배를 만들 계획이다. 50명이 일하던 엔진 파트에 20명밖에 없지만 설치와 프로펠러를 하청업체에 넘기면 된다. 방산법 때문에 비정규직을 쓸 수 없는 특수선을 빼고 상선의 설계도 이미 외주화했다.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의 부산항에 돌아올 노동자는 그리운 정규직이 아닌 하청노동자들뿐이다.
한진중공업에 이웃한 대선조선의 일자리는 괜찮을까? 조선공업협회 자료를 찾았다. 국내 9위 조선소로 1년에 20척이 넘는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을 만드는 조선소다. 그런데 직영노동자는 139명뿐이다. 하청노동자가 무려 1739명이나 된다. 한진중공업보다 훨씬 심각한 하청 조선소다.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배를 수주하지 못하면 쫓겨나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하청 용접공. 그들이 만드는 배는 안전할까?
버스를 타고 작은 조선소들을 지나 연안여객터미널에 내렸다. 대합실이 조용하다 못해 스산하다. 승객이 거의 없다가 최근 들어 조금 늘었단다. 6층 전망대에 올랐다. 아무도 없다. 항구에는 부산에서 제주를 왕복 운항하는 서경파라다이스호가 정박해 있다. 트럭과 지게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며 화물을 싣는다. 이 여객선의 나이는 몇 살일까? 이 배는 안전할까? 승무원들은 정규직일까?
하청조선소서 만드는 배는 안전할까?
가까이 있는 국제여객터미널도 한산하다. 부산에 놀러왔다 돌아가는 가난한 일본 여행객들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국내 여객선과는 달리 국제 여객선은 인원과 화물 적재가 엄격하다. 여권과 비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승선 인원을 모르는 일은 있을 수 없고, 화물도 수입과 수출 통관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원들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계약직 선원들이 많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자회사를 만들어 선원을 채용하기도 한다. 선장을 비롯해 핵심 부서인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던 세월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부관훼리에서 일하는 강회숙씨는 “20년 전 같은 여객선 회사에서 일해도 선원은 육상업무를 하는 사무직의 두 배가 넘는 월급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선원의 월급은 사무직 노동자들과 차이가 없거나 더 낮다. 한 배에서 10년씩 일하는 항해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강씨는 노동조건은 열악한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직률이 높다고 말한다. 국내 선원 3만8000여명 중 비정규직은 70%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안여객선 선원의 평균 월급은 2011년 기준 329만원 정도였다.
육상업무를 하는 사무직 노동자들도 계약직이 많아졌다. 동방, 세방 등 화물 하역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잘못을 감시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노동조합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힘이 없다. 우리는 비정규직이 관리하고, 화물을 싣고,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있다.
자갈치시장을 지나면 보이는 공동어시장은 어선을 타는 선원들이 오가는 곳이다. 20년 동안 트롤어선을 타고 있는 항해사 최재천씨는 한 달에 200만원을 벌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나마 항해사와 기관사들은 나은 편이다. 한국인들이 떠난 고깃배는 이주노동자 선원들로 채워지고 있다. 부산에만 1200명 정도의 이주노동자 선원들이 일한다. 지난 2월 14일 인도네시아 선원이 한국인 동료들에게 맞아 숨진 사건이 벌어졌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 94%가 폭언을, 43%가 폭행을 경험했다. 해고되고 강제출국을 당하기 때문에 신고도 못한다.
공동어시장에서 거리 상담을 통해 떼어먹은 체불임금과 수수료를 받아주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민과 함께’의 김그루씨가 들려준 이주노동자 선원들의 실상은 끔찍했다. 김경협 의원은 지난 5월 8일 선원 등 국민 생명과 안전에 밀접한 업무에 대해선 계약직 노동자 채용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선주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고, 정부는 다른 직종으로 확산될까봐 입을 닫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 항구도시 부산. 배를 만들고 배를 타는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항구에 가득하다. 부산항의 일자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정규직 노동자여~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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