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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를 노래로…‘민중 대중가요’ 전국에 뿌리다

참된 2013. 6. 23. 21:56

오월 광주를 노래로…‘민중 대중가요’ 전국에 뿌리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한겨레    등록 : 2013.06.23 20:54 수정 : 2013.06.23 20:54

지난달 27일 저녁 광주 남구 구동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에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 김종률(왼쪽)씨가 출연해 가수 김원중씨와 광주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원중씨 제공

[호남 쏙] 광주 음악인들의 활약사

광주엔 독특한 노래의 흐름이 있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던 시절, 광주에서 만든 노래는 달랐다. 선율은 서정적이었으나 현실을 이야기했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의 아픔을 담은 노래가 광주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광주의 노래, 광주 음악은 무엇인가.

“이 지역의 음악은 뭔가 달라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일들을 나하고 무관하다고 보질 않았지요. 그런 생각이 이쪽 예인들에게 녹아들어 있었어요. 생각이 많은 노래라고 할까.” 가수 김원중(54)씨는 19일 ‘광주 음악’, ‘광주의 노래’가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979년 3회 <문화방송>(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전남대생 김종률씨의 ‘영랑과 강진’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자/ 그곳 백제의 향기 서린 곳/ 영랑이 살았던 강진…”이란 가사가 시처럼 흐른다. 광주 출신 정오차(57)씨가 81년 엠비시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바윗돌’은 대상곡이지만, 금지곡이 됐다. “5·18 당시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묘비를 상징하는 노래”라는 배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중씨는 “부산 출신이 대학가요제에 입상한 노래들은 감각적이고 필(감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부산뿐 아니라 서울 등 전국의 노래 스타일이다. 그런데 광주의 노래는 잘 바뀌지 않는 경향성이 있다”고 했다. 70년대 광주 엠비시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음악다방 디제이 문화 및 통기타 가수들의 공연 등은 광주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80년대때 아픔 알리려 ‘노래운동’
5·18 당시 기억 은유적으로 표현
전두환 정권 시절 ‘금지곡’ 수난

89년 ‘5월 추모’ 국내 첫 거리공연
2년뒤엔 전야제 공연으로 이어져
5·18 기록관에 120여곡 전시 예정

하지만 80년대 이후 광주에선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가 어려웠다.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55)씨는 “광주에서 만든 포크 계열 노래의 가장 큰 특징은 굉장히 서정적이면서도 가사가 현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고발한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최영경 동신대 교수(실용음악과)는 ‘광주지역의 대중음악인 활동사 연구’(2012년)라는 논문에서 “광주에서 생산돼 유행한 대중가요들은 광주항쟁의 아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담아 건전가요처럼 불렀으나 민중가요적인 요소가 다분한 대중가요였다”고 밝힌 바 있다.

김원중씨가 부른 ‘바위섬’(1984년·배창희 곡)은 5·18 당시 고립된 광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였다. 전두환 정권 때인 87년 내놓은 그의 노래 ‘직녀에게’(박문옥 곡)는 발표 직후 금지곡이 됐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빌려 통일을 염원하는 문병란 시인의 시를 딴 가사 때문이었다.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가 지난달 5·18 33돌을 맞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임을 위한 행진곡’ 원본 악보. 뉴시스
광주의 가수들은 85년 <예향의 젊은 선율>이란 음반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대학가요제 수상자인 박문옥·김정식·김종률씨, 신상균(현 공무원)·김원중씨가 합작한 이 포크 음반에 ‘바위섬’이 실렸다. 김원중씨는 “전국 최초의 지역 음반이었다. 당시 음반은 서울에서만 만들었다. 이 음반을 ‘광주 음악’의 시발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85년 창단한 음악그룹 ‘꼬두메’는 “광주 창작음악의 산실”이 됐다. 꼬두메 멤버 김순곤씨는 조용필씨의 노래 ‘고추잠자리’, ‘한강’ 등을 작사한 이다.

87년엔 광주에 녹음스튜디오 ‘소리모아’가 설립돼 음반 작업을 할 토대를 갖췄다. 소리모아 리더로서 77년 엠비시 대학가요제에서 ‘저녁무렵’으로 동상을 받은 박문옥(58)씨는 95년 음반 <광주여 우리 노래여!>를 내는 등 줄기찬 공연·창작 활동으로 광주 음악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꼬두메 한보리(본명 배경희)·오영묵씨는 2003~2004년 시와 음악, 그림을 함께하는 ‘포엠 콘서트’란 새 장르를 선보였다.

1980년대 광주에선 5월의 아픔을 알리려는 노래운동이 뜨거웠다. 82년 4월 광주에서 나온 <넋풀이-빛의 결혼식>이란 비합법 음반이 신호탄이었다. 대표적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여기에 들어 있었다. 82년 2월20일, 5·18 항쟁 지도부 윤상원 열사와 광주 들불야학 동지였던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모티프 삼아 이들의 넋을 풀어주자는 노래극이었다. 광주지역 대학 연극반·탈춤반 출신인 전용호·김선출·임희숙·임영희·김은경씨 등 ‘광대’ 멤버들이 만들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라는 시를 개작한 가사에 김종률씨가 곡을 붙여 ‘님을 위한 행진곡’(원제)이 탄생했다. 광주문화방송 프로듀서였던 오창규씨가 곡을 불렀다. 광주 북구 운암동 광주문예회관 대극장 앞 국악당 터에 있던 황석영씨의 자택 2층 방에서,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군용 담요로 창문을 가린 채 소형 일제 카세트녹음기로 녹음됐다.

80년대 광주의 대표적인 민중가요 창작자는 최근 타계한 범능 스님(예명 정세현)이었다. 정세현씨는 85년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홍보국장이던 고규태(54) 시인과 함께 음반 <광주여 오월이여>를 제작했다. 5·18 민중항쟁 모든 과정을 노래와 다큐멘터리 낭송 등으로 엮었다. 여기에 실린 정세현씨의 곡 ‘광주출전가’는 80년대 대학가와 거리시위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 가운데 하나였다. 고 시인은 “정세현·박영정·박선정·임종수 등과 모여서 광주의 진상을 오디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자고 결의했다. 제목이 ‘광주출정가’로 잘못 알려졌다. 정벌하러 간다는 출정은 제국주의적이지만, 출전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는 의미”라고 회고했다. ‘전진하는 오월’은 고 시인의 가사에 화가 김경주(58) 동신대 교수와 박태영씨가 곡을 붙인 노래였다. ‘오월 판화’로 잘 알려진 김 교수는 김남주의 시 ‘죽창가’에 곡을 붙였다. 87년 정세현씨가 주도해 결성한 노래패 친구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의연한 산하’ 등을 소리모아 스튜디오 등에서 녹음해 전국에 뿌렸다. 음악평론가 노동은 교수는 논문 ‘5·18과 음악운동’(2003년)에서 “정세현은 전통음악을 전공한 음악가다. ‘꽃아 꽃아’는 작품에서 전통음악의 장단을 현대풍으로 처리하고, 후반부에 굿거리장단과 육자배기 가락으로 넘실대는 작품이어서 여타의 노래 작품들을 더 풍요롭게 했다”고 평가했다. 93년 홀연히 출가한 정세현씨는 전남 화순 불지사에서 명상·염불·찬불 음반을 만들며 음악을 통한 수행활동을 하다가 뇌출혈로 지난 13일 입적했다. 고 시인은 “범능 스님은 행진곡풍의 운동가요 대신 민중가요에 눈물과 물기가 묻어나도록 서정성을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89년엔 전남대 출신 박종화(50·시인)씨가 ‘지리산’, ‘투쟁의 한길로’ 등을 작곡해 노래운동에 힘을 보탰다.

광주에선 대중음악과 민중가요가 거리에서도 만났다. 가수 김원중씨는 89년 전국에서 처음 길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실내 5월 추모공연 때마다 “5월을 알 만한 사람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거리 공연을 떠올렸다. 이듬해 금남로 광주가톨릭센터 앞 5월 추모공연으로 확대됐다. 전국의 노래패가 모였다. 공연의 전국화가 이뤄진 셈이었다. 그 이듬해부턴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전야제 문화공연으로 이어졌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광주의 노래운동은 다소 주춤해졌다.

그런데 올해 들어 박근혜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시도’가 다시 광주의 노래를 되살리고 있다. 5·18 단체 등은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이 노래를 5·18 기념식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할 것을 국가보훈처에 촉구하고 있다. 5·18 33돌인 올해 5월 일부 종합편성채널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다시 꺼내고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씨가 1670억여원 추징금을 내지 않고도 편하게 사는 현실이 ‘역사의 기억’에 불을 지핀 것이다.

2011년 5월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광주시는 광주가톨릭센터에 ‘5·18 기록관(아카이브)’을 조성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 5월 광주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120여곡도 전시될 참이다. 이경률(52) 광주시 인권담당관은 “지난달 이전한 광주가톨릭센터에 5·18 노래를 모으고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선태(58)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5·18의 기억을 공유하고 전승하는 데 노래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하 1층 소극장이 91.64㎡(56석)로 소규모라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김원중씨 등은 “5·18 기록관이 기록을 단순히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공연을 상시화해 젊은 세대가 80년 광주를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