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희 기자 dohee@vop.co.kr 민중의 소리 기사입력 : 2010-12-17 11:13:08 최종업데이트 : 2010-12-19 10:39:21
모 대기업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초반의 여성이 백혈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또 다른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자동차를 만들던 30대 후반의 남성은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현실은 아니다. 연극 ‘반도체소녀’의 내용 일부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연은 현실과 묘하게도 닮아 있다.
ⓒ양지웅 기자
문화창작집단 날 최현 대표
“연극 ‘반도체소녀’는 한마디로 ‘거울보기’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특정 계층을 제외하고는 자기 얘기, 가족 혹은 우리 이웃의 얘기일 수 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대학원생, 비정규직이 등장하고 심지어 현실에서는 연극배우들조차 비정규직입니다. 다들 힘들어 죽겠는데 왜 굳이 이런 연극을 보여 주냐구요? 그게 아니라 ‘당당하게 거울보기’를 하면 내 모습이, 우리 가족의 모습이, 우리 이웃의 모습이 그렇게 추하거나 힘들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기에서 희망을 보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거죠. ‘반도체소녀’는 그런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연극 ‘반도체소녀’를 제작한 문화창작집단 ‘날’ 최현(35) 대표의 말이다. 문화계에 몸담고 있는지라 과연 최 대표는 풍기는 면모부터 ‘예술인’ 같았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에 호탕한 웃음, 시원시원하면서도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는 진중한 느낌을 주는 한 극단의 대표라기보다는 사실 배우에 가까웠다. 실제 최 대표, 현재는 연극계에 몸담고 있지만 꿈은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란다.
“저는 사실 영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연극은 형(최철)이 고등학교 때부터 하던 것이었죠. 저는 유일한 취미가 영화보기였어요. 그런데 고 3 때 진로를 결정하게 됐고 뭘 할까 고민하다 생뚱맞게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배우가 되면 많은 직업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95학번으로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습니다”
여담도 있다. 서울예대 영화과 시험을 보려 했으나, 원서 쓰는 날 모 선배에게 ‘꼬드김’을 당해서 연극과 시험을 보게 됐단다. 모 선배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온 최 대표에게 배우를 하러 왔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에 ‘배우는 연극을 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결국 최 대표는 선배의 설득에 넘어가 연극과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다. 우여곡절 끝에 최 대표를 연극계로 이끈 선배, 그 유명한 배우 김수로씨다.
최 대표는 호탕하게 웃으며 영화과가 아닌 연극과에 입학한 비화를 털어놓았지만 사실 선배의 설득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 대표에 따르면 당시는 학문적 차원에서 연극과 영화가 크게 분리돼 있지 않아 영화를 하려면 연극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를 하고 싶고,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연극과의 연을 맺게 됐다.
그러나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인극도 있긴 하지만 연극은 다양한 파트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혼자서 하는 것은 잘 했다”는 최 대표에게 연극이 만만했을 리 없다. 한 때 포기의 순간에 이른 적도 있다. 그러나 무대가 갖는 마력은 대단했다. 최 대표가 “정말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는데 무대에 서고 나니 마음이 바뀌더라구요”라고 털어놓은 것이 빈말만은 아닐 것이다.
“제게 있어 연극이라 함은 고귀하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가 박혀있어요. 연극의 기원을 고대 제사로 보거든요. 그래서 연극은 신성시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마력을 접하고 나니 변화가 생기더라구요”
물론 영화에 대한 욕심도 여전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 고민을 했는데 지인 대부분은 좋은 극단에서 10년 정도 있다 나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를 하던 후배는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고민이 됐다. 연극도 좋지만 ‘도구’로써의 연극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 쪽에서도 ‘헝그리’하다는 독립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날’에 합류하기까지 줄곧 영화 일을 해왔다.
연극과는 영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최 대표가 한 극단의 대표까지 맡게 된 것은 순전히 형덕분이었다. 애초 문화창작집단 ‘날’을 만든 것도 형 최철 씨였다. 최 대표는 ‘날’의 4번째 작품 ‘삽질’ 때부터 함께 일하게 됐다.
“저는 사실 형과 성향이 많이 안 맞습니다. 그래도 서로의 색깔이나 길을 존중해주는 편이죠. 형이 제게 ‘날’의 첫 작품 ‘마마’의 주연 자리에 제안했는데 거부한 적도 있었어요. 연극을 경외하고 사랑하지만 저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초창기에 형을 도와준다는 개념으로 캐스팅 등을 도왔죠. 그러다 어느 시점에 형이 대학로 연극판에서 대중들에게 한 발 다가서는 것이 보였어요. 대학로에서 사회적인 것을 담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그래서 같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날’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현재 형제는 ‘날’을 함께 꾸려가고 있다. 형은 작품을 쓰고, 연출을 맡는 등 연극에 몰두하고 동생은 대외적인 역할을 맡기로 했다. 최 대표가 인터뷰를 위해 만나자마자, 명함을 내밀면서 ‘대표’란 직함에 쑥스러워하며 장황한 설명을 한 이유가 그제야 납득이 됐다.
ⓒ양지웅 기자
문화창작집단 날 최현 대표
‘날’이 여섯 번째 작품으로 ‘반도체소녀’를 무대에 올린 것은 그간의 작품들과 맥을 같이 한다. ‘날’은 지난 2005년 연극 ‘마마’로 시작, ‘코뮌’, ‘관동여인숙’, ‘삽질’과 ‘리스트’ 등 사회적 이슈와 인간 내면 심리를 짜임새 있게 풀어낸 작품을 선보였다. 반면,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공연이라고 그런 사람들만 쓰고, 그런 사람들만 올 것이라고 해요. 자기검열에 빠진 거죠.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성향으로는 진보, 보수 다 있습니다. 그저 사람이 좋아 그런 것을 중심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극이라는 것은 다양한 스펙트럼과 관객들의 평가에 맡기는 겁니다. 실제 우리 연극을 접하면 다양한 반응이 나옵니다. 제가 형과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이기도 하구요”
최 대표의 말대로 ‘날’의 연극이 사회적 메시지 전달에 치중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명백한 오산이다. 이번 연극 ‘반도체소녀’만 해도 그렇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으로 얻어 올해 3월 23살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박지연씨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연극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고된 교육업체 학습지 노동자,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대학원생, 대기업 자동차 하청업체 노동자, 호스피스 간호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지만 주인공들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또 살아간다. 그야말로 우리네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문화창작집단 '날'
연극 '반도체소녀'의 포스터
그래서 이번 작품 포스터는 따뜻한 느낌이 나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최 대표가 문득 “이번엔 정말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간의 고충이 느껴지는 얘기였다. 다행히 최 대표의 바람대로 이번 작품에 대한 언론의 관심, 꽤 뜨겁다. 스포트라이트까지는 아니어도 연극 시작 전부터 각종 진모매체에서 최 대표 인터뷰 기사와 연극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삽질(2009년 1~2월 공연, 2008년 ‘촛불 소녀’, 변절한 90년대 운동권 출신 청년 사업가 등을 소재로 함)’ 때 지금 이 시대에 왜 그런 얘기를 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 지난 얘기들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했습니다. ‘반도체소녀’도 그런 흐름과 만났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세상이 안 왔으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이 오더라구요” 극단 5~6년 만에 쏟아진 언론의 관심에 대한 최 대표의 답이다. ‘날’과 그 동안 선보인 작품들에 대해 최 대표는 자신감 넘쳤지만 한국 연극계에서 ‘날’같은 소규모 극단이 처한 환경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날이 선보인 작품은 ‘반도체소녀’를 제외하고 총 5작품. 2달 이상 장기 공연한 작품은 하나도 없다. 장기 공연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희 극단은 일종의 프로젝트 개념입니다. 평소에는 자기 일을 하고 있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뭉쳐서 하죠. 극단의 기본적인 구조는 대표, 연출, 기획팀과 배우들이 있는 것인데 좋은 극단이라 해도 연극이라는 것이 상업성을 못 띄기 때문에 운영이 힘들어지게 마련입니다. 대부분 자체 제작이 아니라, 지원금을 받으면서 하거든요. 스펙트럼의 다양성이 있어 연극은 벗기는 것, 코미디,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관객들이 택하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예요. 그런데 자극적인 것들만 제작돼요. 현실에서는 그런 것들이 팔리니까. 재미있는 것은 실제 그런 것들도 팔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제작이 안 되는 거죠”
한국 연극계와 현실에 대한 최 대표의 아쉬움은 이어졌다. 최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연극 판인 대학로는 대한민국의 축소판과도 같다. 부익부 빈익빈과 효율 비효율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 생존의 논리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다양한 소리들이 나올 수 없다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그나마 우리는 그런 (프로젝트)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힘겹지만 꿋꿋하게 계속 하는 겁니다. 무대가 주는 영향력은 상당히 큽니다. 연극계가 정화된다면 나라 전체적으로도 변화의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중에는 배우만 하면서도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경제적 논리로만 따지면 말도 안 되죠. 제작으로 남기는 것 솔직히 없습니다. 하지만 ‘날’이 하는 얘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생업으로 하는 분들에게 정확히 (출연료 등을) 약속하고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계속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극’과 ‘연극배우’에는 ‘가난’과 ‘고단한 삶’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반도체소녀’를 올리는 공간 ‘혜화동 1번지’ 역시 5줄에 60석 남짓한 자그마한 객석이 전부다. ‘대표’라는 직함을 가졌지만 최 대표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일반적인 논리에서 보면 어이없는 삶이죠. 불규칙적인 생활과 주변 분들에게 민폐 끼치는 거죠. 결혼한 이들은 적절한 때에 집에 돈을 못 가져가니까요. 허울만 좋은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밥만 먹고 못 살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힘들고 지쳐도, 때로는 절망해도 그렇게 절망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무관심 속에 발로 뛰었는데 올해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네요. 여전히 힘들지만 전과는 다른 힘듦예요. 부담감 백배지만 비빌 언덕이라도 있으니 기쁩니다”
연극과 ‘날’을 위해 포스터를 한 뭉치 들고 바삐 움직이던 최 대표. 조만간 영화 속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날이 오지 않을까?
“삶이란 미래를 모르는 거죠. 지금 제 상황에서 기를 수 있는 역량을 키워 꼭 영화배우가 될 겁니다. 그 때가 되면 스케줄 때문에 지금처럼 발로 뛸 수는 없겠지만 제작비 한 푼 더 벌 수 있고 뭔가 연극에 더 신경을 쓸 수 있을 겁니다. 일단 ‘반도체소녀’ 보러 많이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수든 비판이든 와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이들을 만나 긍정적 에너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반도체소녀’는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혜화동1번지’에서 내년 1월 2일까지 계속된다.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대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와 작가 겸 사회운동가 류민용이 교수 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끈다. 또 이동용, 오주환, 곽지숙, 임세운, 이혜영, 정문선이 출연한다.
<구도희 기자 dohee@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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