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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1주기 추도식에 다녀와서

참된 2012. 9. 4. 20:44

▲ 이소선 어머니 묘역 마이크를 잡은 보습이 슬퍼보다고 배은심 어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 이명옥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1주기 추도식에 다녀와서

[포토] 어머니를 기억했던 모든 이가 얽히고설켜 인사했습니다
12.09.04 17:23l최종 업데이트 12.09.04 17:40l
이명옥(mmsarah)  오마이뉴스

 

 

 

 

지난 3일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1주기였습니다. 11시 추도식을 위해 동대문에서 출발해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하니 9시쯤 되었더군요. 어머니가 잠드신 곳에는 노래하는 노동자 박준 동지와 음향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미 와 있었습니다.

더부룩하게 풀이 자란 것을 본 이장주 금속노조 문화국장이 어디선가 낫을 한 자루 가져와 서툰 솜씨로 봉분 위의 풀을 쳐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디선가 달려온 두 분이 잔디 깎는 기계로 이소선 어머니 묘역과 전태일 열사 묘역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 울음을 참는 어르신과 배은심 어머니 배은심 어머니를 보며 한 어머니가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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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럽게 단장한 이소선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소선 합창단'이 합창 연습을 했습니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추도식 시간이 다가오자 민가협, 유가협, 청계피복노조 사람들, 이 땅의 주인인 노동자들, 민주·한국 등 양대 노총 임원들, 추모연대, 전철연,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정치인들까지 속속 모였습니다. 이소선 어머니를 추모하려 모인 분들은 눈물을 삼키기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어머니를 그리워하시더군요.

▲ 추도식 장면 이소선 어머니 1주기 추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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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전태일 재단 이사장의 사회로 추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추도사는 어머니와 가까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이 제일 먼저 했습니다. 배은심 어머니의 눈길만으로도 그분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면 과장일까요?

▲ 추모사 중인 배은심 어머니 배은심 유가협 회장이 추모사를 하며 이소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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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심 어머니는 "마이크를 잡은 어머니 입매가 슬퍼 보인다,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걸까, 사람들은 벌써 1년이 됐다고 하는 데... 나는 어머니가 여전히 함께 계시는 것 같다, 어려움이 닥치면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고 말했습니다.

▲ 백기완 선생님 추모사 백기완 선생님이 추모의 말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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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은 추모의 말씀 중에 뼈아픈 각성을 촉구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소선 어머니의 1주기가 된 것을 알게 되셨다고요. 잠이 들었는데 이소선 어머니가 꿈에 찾아오셔서는 "왜 안 오려고 하느냐, 뭐 하시느냐"며 잠을 깨웠다고요. 그래서 백기완 선생은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이 늙은이를 깨우느냐"며 잠을 깨어 추도식에 왔다고 합니다.

백 선생의 호통이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추모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박정희 유신의 잔당들이 부활을 위해 정권을 잡으려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 민주노총 뭐 하느냐.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 뭐하느냐. 왜 실천의 장에 적극 나서 싸우지 않는 것이냐. 당장 현장에 뛰어들어라. 나도 따라나서겠다."

그리고는 덧붙였습니다.

"어머니 제 말이 맞지요? 이 말을 하라고 이 늙은이를 깨우셨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따라갈게요." 

그 말씀을 듣고, 모두가 침묵하면서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지요. 백 선생도 건강이 안 좋아 보이고 까칠해 보이셔서 마음에 걸리더군요. '선생님, 건강하셔서 늘 호랑이와 같은 기상으로 노동자와 민중을 독려해 주셔야 합니다.'

▲ 전태삼님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님이 인터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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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삼 전태일 열사 동생이 형인 전태일 열사에게 들었다며 전해 준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열악한 작업 환경 때문에 폐병 환자가 유난히 많았던 피복 노동자에게 건강 검진이 있다며 엑스레이를 찍으러 오라고 통지를 했다는 것입니다. 엑스레이를 찍으려고 밥을 굶고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허기진 채로 돌아와 작업했지만, 단 한 번도 엑스레이 결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전태일 열사가 동생에게 들려준 말에 따르면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필름을 넣지 않고, 빈 기계로 그저 사진을 찍는 흉내만 냈기 때문에 결과물로 내어 줄 증거가 없었다고 합니다. 노동자를 기만하는 사주와 병원측이 공모한 범죄였던 셈이지요. 그런 기만을 저지르기 위해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어린 여공들을 온종일 굶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전태삼님은 지금 대한문 앞 시청 앞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현실도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필름을 넣고 찍어봐도 아무것도 찍혀 나올 것이 없는 것이 지금 이 땅 노동자들, 특히 해고노동자의 현실이라는 이야기가 가슴 무겁게 다가오는군요.

추도식을 끝으로 유가족 대표 전태삼님은 분향을 했습니다. 배은심 어머님을 비롯한 어르신들, 재야 어르신들, 정치인들 등등. 이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은 괜찮은데 새누리당의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인사를 하려고 줄을 선 것이지요.

그것을 본 어르신 중 몇 분이 "무슨 염치로 여기를 왔느냐, 이소선 어머니가 기뻐하실 것 같으냐"며 역정을 내셨고,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의 분노도 폭발했습니다.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고, 운동 정신을 훼손하고, 민중의 피를 말린 자가 감히 여기 와서 인사를 하려는 것이냐"고 말이지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온갖 야유와 질타를 받으면서도 인사하는데, 끼어 있더군요.

▲ 오도엽 시인이 담배 놓고 있다. 오도엽 시인이 평소 어머니가 즐겨 태우던 담배를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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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으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아>라는 이소선 어머니의 삶을 정리한 글을 쓰기 위해 이소선 어머니가 지어 주시는 밥을 두 해나 먹었던 오도엽 시인. 그이는 담배에 불을 붙여 어머니 앞에 놓아 드리며 오래오래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지 못 하더군요. 그의 등이 들썩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 울음을 안으로 삭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일어서서 물끄러미 어머니 사진을 바라다보던 오도엽 시인의 눈길이 서늘하게 가슴에 와 박히더군요.

▲ 담배 한 가치가 보인다. 오도엽 시인이 놓아드린 담배 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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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를 사랑했던 사람들, 이소선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 이소선 어머니를 위로했던 사람들, 이소선 어머니께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 이소선 어머니께 힘을 실어 드렸던 사람들, 이소선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제각각의 모습으로 인사하고 돌아갔습니다. 마치 우리네 인생사와 세상의 모습처럼 말이지요. 그들의 모습대로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의 시간을 채워갈테지요. 그게 우리네 인생의 사는 모습이니까요.
▲ 이소선 어머니와 박용길 장로님 두 분은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하나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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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땅 노동자들을 염려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어머니가 외치셨던 하나 되어 싸우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이 땅의 노동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살겠습니다. 어머니처럼 멋진 분이 저희 노동자의 어머니로 평생을 사셨으니 저희도 부끄럽지 않은 자녀가 되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