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사람

[한상균 쌍용차 지부장 옥중서신] "포기하지 않고 질기게 투쟁하겠습니다"

참된 2010. 5. 16. 00:16

2010-01-11 10:01:23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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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신] "포기하지 않고 질기게 투쟁하겠습니다"



이 땅 노동자의 겨울! 여느 해보다 춥기만 합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두툼한 보고서나 진단서는 이 추위를 녹여줄 화롯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을, 노동자를 때려잡는 정권에 돌릴 때에만 꽁꽁 얼어붙은 노동자의 마음을 녹여줄 화롯불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빠르게만 흘러갑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노동자의 마음은 고통 받은 그 자리에 멈춰있을 뿐입니다. 하루 빨리 동지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온기를 가슴에 담은 채 백호처럼 당차게 내달렸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2009년 쌍용차 투쟁! 물러설 수 없었던 총자본과의 투쟁. ‘이를 최전선에서 사수해냈더라면 옥에서 반성문을 쓰지 않고 동투 현장에서 동지들과 함께 하고 있을 텐데’ 라고 자책도 해 봅니다.

법원의 강제인가로 회생의 발판을 만든 쌍용차!
3천 조합원의 잔혹한 피의 대가로 회사의 정상화는 진행되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을 첫 번째 정책과제라고 도배하고 있는 MB정권은 쌍용차에 신차 개발비조차 빌려주지 않고 딴전만 부리고 있습니다.

전후방 파급효과가 막대한, 20만 일자리와 직결된 국가 전력산업을 노동자와 함께 공격적으로 정상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천 노동자만 생존의 벼랑 끝에서 밀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처자식들까지 짓밟고 있습니다. 해고와 구속도 모자라 평생 모아도 불가능한 수십억의 손배 가압류에 퇴직금, 체불임금, 채권 가압류까지 자행하고 있습니다.

수조원에 달하는 쌍용차 자산과 국부까지 약탈해 간 놈들에겐 면죄부를 주고 감자를 했는데도 ‘대주주’라니…. 정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 듭니다.

기술 유출, 투자약속 불이행, 자본 약탈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을 정부가 책임 있게 받아들여 자기 역할을 했더라면 쌍용차 상황은 호미로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지만 강한 회사’ 쌍용차는 전체 조합원들의 활기 속에서 2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회사로 확장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강추위에 물러서지 않고, 전국의 현장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 쌍용차 조합원들은 이제 더 이상 밀릴 곳도 없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질기게 투쟁하겠습니다.

동투 현장에 동지가 없다고 좌절하지 맙시다. 전체 노동자 계급의 힘은 온몸 던졌던 선배님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깃발만 나부끼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현실은 드라마에서 미실과 덕만공주가 힘을 겨루며 사용했던 ‘허패’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지요. 간에 안 맞는, 권력 유지에 도움이 안 되는 노동자와 집단.단체는 모조리 때려잡겠다는 정권의 자신감! 저들은 학습효과를 누적해 자신감으로 무장했고 탄압을 즐기며 노동자들을 조롱까지 하고 있습니다.

주춤할 수 있는 촌각의 여유도 없는 지금, 전임자가 없는 노조의 역사까지 강요당하고 있으니 어찌할까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장과 함께 하는 위력적인 투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자본도, 조합원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훈수 두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선도투쟁의 선두에 서겠다는 실천입니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정규직’이고 노동자, 농민, 서민이 행복해야 ‘국격’이 올라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바로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010년, 대한민국의 기둥뿌리가 썩어가는 줄 모르는 저들에게 ‘이 땅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것을 각인시켜 냅시다.

동지 여러분!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했고, 민주노조 깃발을 지켜내지 못한 놈의 자책이 ‘외양간 고치는’ 소리로만 된 것 같습니다. 반성하는 마음에서 나온 자책이라 받아주십시오.

쌍용차노조는 IMF사태 이후 지금까지 자본의 통제 하에서 조합주의 권력만 바뀌었을 뿐 연대와 헌신을 게을리 했습니다. 특권의 조끼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조합원의 생각과 판단이 지도부보다 위에 있게 되었습니다.

77일 간의 옥쇄투쟁 중 20일째 되는 날, 촛불 집회를 위해 현장에 모인 모 조합원이 ‘지부장, 쇼 그만해라’ 하며 따지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불신의 벽이 높았나 봅니다. 활동가였을 때부터 더 가까이 현장에 밀착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동지 여러분!
지금 쌍용차노조가 겪고 있는 현실이 민주노총 전체 현장에 퍼져있는 모습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허패’로는 안 된다는 것을,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 이제 네 밥그릇까지 빼앗는구나’ 하는 세상의 비판이 추상같이 채찍질을 합니다.

노사평화, 공존, 상생…. 요즘 많이 나오는 화두입니다. 분명한 것은 노동자에게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한 단어라는 것입니다. ‘허패’보다 강한 것은 단결이라는 ‘진패’입니다.


2009년 쌍용차 투쟁에 함께 해준 동지들이 있기에, 상경투쟁을 마치고 늦은 밤 ‘단결의 광장’에 집결해 어깨동무하고 장대비를 함께 맞아준 동지들이 있기에, 1천5백만 노동자의 중심인 민주노총의 깃발은 탄압에 맞서 전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동지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10년 1월 3일
수원구치소 평택지소에서 한상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