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사람

민주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 동지 별세(2006.2.8)

참된 2009. 9. 24. 00:06

                          

                    

      

민주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 동지 별세

<부고>향년 43세. 7일 별세, 전북대병원 영안실 2층, 5일장

2006-02-08 00:03:19   참소리

 

 

[근조] 삼가 조문익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민주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조문익(향년 43세) 동지가 교통사고로 7일 밤 9시 50분경 운명을 하셨습니다. 이날 장수군 번암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제설차의 사고로 다시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유해는 전북대학교 대학병원 영안실에 안치됐습니다.
빈소는 전북대병원 영안실 2층입니다. ☎(063)250-2450

고인의 아내 이현선님, 상주(喪主) 아들 조용화 조용창군, 친형 조창익님과 친동생(3인), 부모님 등 유족들은 노동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장례를 엄수키 위해 장례일정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본부장 신동진)은 8일 유족과 협의해 각 시민사회 민중단체 등 제 단체에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한 절차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장례위원회에서는 8일 오후 2시 위원회 논의를 거쳐 발인, 영결식, 운구, 안장, 장지 등의 장례일정을 주관키로 했습니다.   

고 조문익장례준비위원회 관계자는 “고인의 명확한 사인을 규명한 후, 꾸려질 장례위원회에서는 유족과 협의해 민주노동 열사 5일장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인은 80년대 학생운동과 90년대부터 민주노총 등의 활동을 통해 항상 투쟁의 현장에서 민주 노동운동에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노동열사추모사업회, 노동포럼, 노동자학부모연대, 인터넷 매체 미디어 운동, 이주여성을 위한 논실마을 운영 등 각계와 연대해 폭넓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삼가 선배노동자로 모범을 보여주었던 고 조문익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고 조문익 전북민주노동열사장

8일 고인의 유족과 전북시민사회단체는 고 조문익 동지의 장례를 ‘고 조문익 전북민주노동열사장’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전북지역에 ‘고 조문익 전북민주노동 열사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공동장례위원장에는 신동진(민주노총 전북본부장), 염경석(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위원장), 한상열(전북통일연대 대표), 박종훈(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표), 이세우(전북민중연대회의 상임대표), 송영기(전농 전북도연맹 의장), 박병훈(전교조 전북지부장), 최동호(전국공무원노조 전북본부장), 소순열(호남사회연구회 회장).








<고 조문익 동지가 살아온 길>

1964. 3 전남 곡성 출생
        오산초등학교, 남성중학교 졸업
1982.   남성고등학교 졸업
1983.   고대 철학과 입학,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
1985.   전북대 철학과 입학
1990.   전북대 철학과 졸업
1992.   전북지역노동조합연합회 간부 활동
95~2005 민주노총 전북본부 활동(교선국장,사무처장, 부본부장)
             한일노동자연대 활동
2002 참소리 상임운영위원
2003. 한일장신대학교 NGO 정책대학원 입학
2004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정책위원
2005 민중언론 참세상 창간 제안자
2005 호남사회연구회 분과위원
2005 장수 논실마을 운영
2006. 2. 한일장신대학교 NGO 정책대학원 졸업 예정
2006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참소리 상임운영위원


 
이글은 생전에 전북지역 노동열사 추모자료집 등을 발간하며 노동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활동을 펼쳤던 당시 조문익 동지가 “노동과 세상을 사랑한 사람들, 영원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추모자료집에 남긴 글입니다.
<참소리>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추모의 뜻을 기리기 위해 고 조문익 민주노동 열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고 받습니다. <편집자>


전북지역 노동열사 추모자료집 편집자 후기

박복실, 최순희, 박용규, 김희철!

네분 동지들의 지난 세월들을 어렴풋이나마 훑으며 나는 참으로 많이 아팠다.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그분들과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그러나 다시 추스르고 전진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국사회 내에 우뚝선 민주노조들의 연대조직, 민주노총이 제대로 서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네분의 열사는 자신들을 바쳐 민주노조의 씨앗들을 만들어냈다. 네분과 함께 한 동료들은 온 몸을 바쳐 힘있는 민주노조운동을 추진해냈다.

그러나, 네분의 열사와 수많은 동료들이 옳지 못한 현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동료들과 희망찬 미래에 대한 불같은 사랑으로 건설한 민주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 휘청이고 있다. 예전에 민주노조운동은 아무리 소수였더라도 전체노동자계급을 대표할 힘을 갖고 있었고 그 힘의 원천은 당연히 ‘숫자’나 ‘세력’이 아니라 ‘윤리성’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네분 노동열사들처럼 전태일열사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은 전체노동자계급의 대의를 가녀린 몸으로 모두 받아 안았다.

세월이 흘러 제도권 내에 발판을 마련하고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할 형식은 어느 정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지금 우리 민주노조운동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미 양적으로 다수가 되어버린 비정규직과 여성과 이주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윤리성’과 순수한 영혼이 밑바탕이 되고, 그러면 의당 만들어지는 ‘양심들의 연대’가 ‘힘’으로 전화하는 민주노조운동을 목격했던 우리들에게 ‘숫자’와 ‘힘’만을 내세우는 것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주지 못하고, 우리가 그토록 이겨내고자 했던 이기심과 타산을 생각나게 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자체가 슬픈 일이다. 전태일열사가 단 한명 있을 때도 전태일열사는 전체 천만노동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보여주었는데.....

나는 네분을 돌아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고, 어쩌면 지금 나를 짓누르는 목의 통증과 어깨의 아픔은 교통사고 후유증이 아니라 네분의 열사와 지난 세월 민주노조운동에 헌신해오신 모든 동료들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네분은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셨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시대상황은 열사들에게 독재와 자본에 맞서 싸우는 고통과 동료들과의 분란으로 인한 고통뿐만 아니라 궁핍한 생활의 고통까지 강제했다. 오두희 선배가 인터뷰과정에 ‘노동운동만 했지, 다른 것은 돌아보지못했던 세대’라고 말했던 그대로 네분은 모두 노동운동에 헌신하느라 대부분 어려운 살림을 감수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네분을 모두 안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의 선후배로서, 지역동지로서, 절친한 친구로서 80년대와 90년대의 전북지역에서 함께 호흡해왔다. 함께 한 활동공간에서 눈을 맞추어가며 직접 활동해본 적은 적지만 네분 모두가 짱짱한 힘으로 지역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기여해왔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박복실열사는 내게 노동운동을 가르쳐준 가톨릭노동사목 노동자의 집 선배로 내게 남아있고, 최순희열사와 김희철열사는 내게 학생운동과 문화운동의 지평을 보개해준 선배와 동료, 후배들이 모여있던 ‘한마당’같은 전북대학교 문화패에서 활동했고, 박용규열사는 한때 민주노총전북본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방용승씨의 후배로 만났다. 모두가 한시대에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생각하며 전북지역에서 헌신했고, 특별히 김희철동지는 고통마저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도 지역노동운동의 선후배관계로 운명지워진 네분의 열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만약 전북노동열사추모사업회의 요청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지역 민주노조운동과 열사들이 걸어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분들이 꿈꾸었던 세상이 아직 오지 않은 이상 우리가 진정으로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으며, 어떻게 하면 만들어갈 수 있는지 다시 꿈꾸기 시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전북노동열사추모사업회와 함께 간략하게나마 지나간 20여년을 돌아보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는데 함께 해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이주철 활동가는 스스로가 건강을 조심해야하는 몸임에도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댄 나를 대신하여 장시간을 들여 세분의 열사에 대한 녹취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셨다. 전북노동열사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 박동진신부님과 유기만 사무국장은 편집과 인쇄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고, 박신부님이 추천하신, 익산 성오인쇄에서 일하는 최정례마틸다님은 참으로 정성을 기울여 교정을 보고 편집을 해주셨다.

노동열사들에 대한 자료집을 만드는 것조차 이렇게 수많은 동료들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했고 참으로 좋았다. 하물며 지나간 한국사회, 전북지역의 20여년을 만들어온 수많은, 지금은 잊혀진 ‘동료’들은 얼마나 소중했던가? 앞으로 만들어갈 20년, 200년을 내다보면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양심’들은 또 얼마나 귀중하게 모셔야할 존재들이자 관계들인가?

인터뷰에 기꺼히 참여해주신 문정현신부님과 오두희선배, 김상배선배와 김지산·김강산형제, 문부산·문원산형제와 김혜경씨 모두 감사한다. 그리고 글을 싸달라는데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기꺼이 마음을 온전히 담은 글을 써주신 전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이철순선배와 전북여성노동자회 박영숙대표, 김희철동지의 아내 김연희씨에게 감사드린다.  

처음에 기획했던대로 일정이 추진이 되지 않아 인터뷰 꼭지를 미처 싣지못하게 된 박용규열사의 동료들에게 죄송하다. 대신 글을 보내주신 방용승씨와 남미영씨, 유연철씨등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    

또, 그분들이 지나온 20여년을 총괄적으로 평가하는 꼭지를 따로 써보고자했는데, 지역노동운동을 훓어보는 꼭지에 간간히 내용을 담는 방식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지역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노동열사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새로운 시대의 전망을 제시하는 데는 필자의 능력이 부족했다. 이후에 전북지역노동운동사를 정리하는 과정에 꼭 담아볼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넘어가야할까보다.

봄이다. 지리산록에는 진달래꽃이 수수하게 빛을 내고 연록빛 이파리들이 산자락을 덮어가고 있다. 열흘뒤면 세계노동자의 인간됨을 선언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메이데이가 되고 우리들의 양심과 영혼을 깨웠던 광주민중항쟁의 그날이 다가온다.

비록 여전히 비정규입법이 우리들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고 신자유주의가 우리가 만들어놓은 권리조차 다시 빼앗아가는 우리시대에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노동해방열사들이 여전히 우리를 마음속으로부터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에 태어나 어느덧 죽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양심과 영혼, 그리고 새세상을 향한 열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2005년 4월 22일
제 115주년 메이데이 주간행사를 몇일 앞두고
백두대간 아래에서 조문익




2006-02-08 00:03:19   편집팀  기자

 

 

이럴수가
소식 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답답해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길 빕니다. 2006/02/08   
함께한
함께해 온 길을 걷던 고인의 영면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낍니다. 좋은 곳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길.... 2006/02/08   
공무원노동자
큰 별이 졌습니다.
너무나 허망하게 떠났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님의 맑은 영혼, 넓은 가슴, 국적을 뛰어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 운동에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셨던 님은 참으로 큰 사람이었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소서!
2006/02/08   
애도
동지의 큰 뜻과 업적에 찬사를 보냅니다.
부디 편히 가소서...
2006/02/08   
圓光
오래전 형이 꿈꾸는 세상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하는 물음에 내 생에는 아닐꺼다라고 했던 말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한 번 꼭 만나야지 하며 미뤄왔던 시간들.... 형을 영정으로 만나야 됨을 뭐라 말할까요.
부디 편안하시길 모든 근심 걱정 놓으시고 착 없이 떠나시길 기원합니다.
2006/02/08   
현자노조에서 함께한
동지와 함께 고민하고 투쟁을 전개했던 그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살아 생전에 좀더 가까이서 더많이 함께하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동지의 그큰뜻 노동해방된 세상을 꿈꾸어 왔으나 이제 살아있는 자에게 맏기시고 이제 부디 편히 가소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2006/02/08   
바다
조의를 표합니다.
아련한 기억으로 되살아납니다
아름다운세상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지만
2006/02/08   
슬픔
눈맑고 열정적인 분이셨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평안한 길 가시기 바랍니다....
2006/02/08   
최기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6/02/08   
현자판매
당신은 가시지만 당신의 뜻과 당신의 정신은 우리가 이어가야할 숭고함입니다. 부디 이승에서의 고통과 번민일랑 모두 벗으시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함이 가득한 곳에서 영면하십시요! 당신의 뜻을 영원히 따르렵니다. 2006/02/09   
전희남
삼가 고인이 명복을 빕니다.
생전에 담당했던 일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이승을 뜨지도 못하고 주변을 맴돌것 같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역활을 분담하여 해나갈 것인즉 걱정 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미련없이 이승을 뜰수 있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그와 이야기 하고 싶을때 살을 맞댈수 없는 고통은 따를지라도 그의 해맑은 영혼은 항상 내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있을 것입니다.
피를 토하는 슬픔을 억누르며 고인을 보내야 하는 심정 그 무슨 말로 표현할수 있을까 마는
이제 진정 그를 보내 드려야 될것 같습니다.
문익아 !
훌훌 털고 편히 가라......
2006/02/09   
황민주
며칠 전 전화통화에서 코시안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셨는데...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06/02/09   
▶근조◀
너무 안따가운 일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6/02/09   
김상정
선배님. 선배님의 뜻, 잊지않고 실천하겠습니다. 부디 편하소서.. 2006/02/09   
둥글이
... 왜...떨어지는 별은 있는데 다시 뜨는 별이 없는가...
새벽이 오려는것인가... 종말이 오려는 것인가...
2006/02/09   
군산
항상 부족한 우리들이기에 옆에 있는것만으로도 너무나큰 위안이었습니다. 아무리 중히 쓰시려고 먼곳으로 데려가셨다고 위안해봐도 큰 허전함은 말할수 없습니다. 그큰 빈자리를 어떻게 하시려고...... 2006/02/09   
남윤선
너무나도 좋은 분이셨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가슴이 무너집니다. 2006/02/09   
김차경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노동자 민중을 향한 숭고한 정신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2006/02/09   
최봉관
함께 고민하고 꿈꾸던 세계는 아득히 멀기만한데 우리 남은자들의 능력은 보잘것 없어 님이 더욱더 그립습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대학원에서 머리 맞대고 고민했던 추억을 명예로 여기고 미력한 힘이나마 당신이 꿈꾸던 세계를 조금이나마 지금 있는 자리에서 노력하겠습니다.......그립습니다. 2006/02/09   
김완자
왜그렇게 먼저 가십니까? 어쩌다 행사장이나 회의장소에서 마주칠때 님은 빙긋이 웃었습니다. 섭섭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잘가세요. 당신이 뚬꾸던 평등세상 만드는데 마음을 이어가겠다고 약속 드릴게요. 2006/02/09   
김형우
만나면 형,하고 부르며 날 안아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동지가 나의형이었슴을...
너무 가슴아픔니다.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동지...
2006/02/09   
맑은영혼
영혼이 맑은 분들은 일찍 떠나시는 건가요!
하늘의 천사가 너무 사랑하셨나 봅니다.
당신을 보면 눈물만 납니다.
목이 메입니다.
자꾸 자꾸 주위를 멤돌며 글을 씁니다.
2006/02/09   
박지명
마지막으로 뵈었던 것이
교통사고로 입원해 병상에 계셨던 모습이었습니다. 병원침대위에서도 명징하게 빛나던 눈동자
잊지 못합니다.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지만,
조문익 님의 죽음은 심상하게 바라봐지지가 않습니다. ................................. 허망합니다 ㅜ.ㅠ
2006/02/10   
늘 웃음 짓던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선명한데 그리 허망하게 생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귀를 의심했었습니다. 오늘 장례식장에 들러서 님의 영정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소서~ 2006/02/10   
원성제
벗이여 고이가소서... 2006/02/11   
정태선
조문익동지, 학창시절 군부독재타도에 헌신하고, 초창기 민주노총의 산파역을 맡아 굳은 일, 어려운 일 마다않고 헌신적으로 생활하던 동지, 그후에도 이 땅의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현장 어디든 늘 함께하던 동지가 오늘 한 줌의 재로 변한모습에 가슴이 어립니다. 동지여! 왕생극락하시옵고, 저 세상에서도 서럽고 슬픈 이땅 노동자 농민 등 민중들의 수호천사가 되어주소서. . . 2006/02/11   
근조
허망합니다. 동지의 뜻 저버리지 않고 항상 실천하겠습니다. 2006/02/12   
농주
문익아. 니가 죽음으로 전해주는 삶의 교훈을 새기고 있다. 잘 가라. 부디 잘 가라... 2006/02/13   
가락
훌륭하신 선배님과의 인연을 가슴속에만 담아두고 지냈는데 갑작스런 소식을 접하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음이 답답합니다.
선배와 함께 곧 문익선배님께 놀러가자면서 이야기도 했었는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편히 쉬십시오.
2006/02/13   
벗이여
중학교때 너무 어려 보이던 너와나
너무도 순수했었지.
그때도 넌 평범하진 않았지.
남들 공부 할 때 만화그리고, 글쓰고, 사색을 좋아했던 너.. 그 모습이 아련하구나.
고등하교때 넌 문학청년이었지..
졸업식때 입고왔던 하얀 도포자락 휘날리며 입고 왔던 생소했던 무명천의 우리옷. 그 모습이 선하구나
언제나 부드럽고 정이 많으면서도 속은 강했던 외유내강의 너.
언제나 수미일관의 생활을 이어온 너.
이렇게 가다니 너무 안타깝구나.
벗이여 더 살아 할일이 너무도 많았을 진데 이렇게
가다니 너무도 너무도 안타깝구나.
벗이여 내 기억속에 영원히 기억될 벗이여..
이제는 고민일랑 하지말고 영면하소서 벗이여..
2006/02/13   
나의 빛
먼 곳에서 소식 듣습니다. <행복한 운동에 대하여>를 받아쓰기 해봅니다. 마음이 아파옵니다. 무엇에 그리 바빠 서둘러 가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