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문학캠프 후기
16일 아침, 네 대의 차에 가득 행사물품을 실고가는 열다섯명 기획단의 마음은 저 아니라도 누구나 조마조마했을 것입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비, 중간 중간 맑게 개는 하늘.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고. 벌써 황간IC를 지나 매곡면으로 가는 유일한 길의 한 중간은 승용차로 건너기 힘들만큼 범람한 물에 잡혀 먹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남에 대한 열정들을 그 비도 막지 못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야외 수업들이 힘들다는 판단에 쓰지 않고 있는 폐교의 한 동의 청소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쓸고 딱고 전등을 가설하고, 바닥을 만들고.... 어느 틈에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 120여명의 벗들이 참여했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아는 얼굴들보다 난생 처음인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이 분들과 앞으로 어떤 인연을 맺어가야 할까. 이 기회를 어떻게 살려 노동문학의 새 계기를 만들어가야 할까. 여러 세월이다보니 어떤 일에도 큰 기대는 갖지 않는 습관이 들긴 했지만 마음이 조금씩 설레였습니다.
강의에 대한 열정들이 느껴졌습니다. 복도가 시끌벅적하다가도 강의가 시작되면 어린이 캠프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맑은 소리, 맑은 노래 소리만이 한적한 황학산 기슭을 간지럽혔습니다. 전국적으로도 드문 자리고, 거의 대중적으로는 처음 있는 자리다보니 한 분 한 분 오신 분들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체적이었고, 두 눈들이 또렸했습니다.
이런 자리가 늘상 그렇듯 뒷풀이 자리가 환상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한참 버려진 폐교의 강당이 을씨년스럽기도 했겠지만 많은 분들이 어느 목로주점에 들린 듯 편하다고 했습니다. 밤새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았고, 그 넓은 공간이 시종일관 웅성웅성 이야기 나누는 소리로 울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벽 3-4시까지 버티는 그 열정. 오갔을 이야기를 모두 모을 수는 없겠지만 그 진지한 토론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거의 허물들이 없었습니다. 아, 이런 게 광장이지 하는 기쁨이 일었습니다.
저는 시종일관 뒷짐만 지고 어슬렁거렸습니다.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부족한 기획단 일에 붙어 일을 도왔습니다. 셀프라는 식사대에는 매 식사 때마다 다른 얼굴들이 붙어 손수 배식을 해주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준비가 부족해 몇 십번을 영동시내와 황간 읍내, 김천시내를 누군가 오가야 했지만 누가 그곳을 다 오갔는지 태도 내지 않았고,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12시가 늦은 야심한 시간, 청개구리를 잡아 달라며 우는 아이 탓에 누군가에게 부탁하곤 잊었는데 그 누군가가 그 밤에 예쁜 청개구리 한 마리를 붙잡아 와 아이에게 내밀며 활짝 웃는데 세상이 밝아지더라는 어느 참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따듯한 마음 나눔들이 어디 한 두가지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캠프의 전 부분에 참여하지 못하면서도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도왔던 한국노총 이은주 문화부장, 김대열 선전부장, 민주노총 박선봉 대협국장,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이곽미옥 동지, 작은책과 전국노동자문학연대 회원들, 그리고 어린이캠프 선생님들 등 여러분들의 묵묵한 책임감은 어쩌면 당연한 일임에도 콧등이 시큰하게 만드는 동지애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 이게 연대구나 라는 마음이 슬핏 들었습니다.
문학운동에 대한 열정이 가득 느껴지는 캠프였습니다. 김하경 선생님은 두 가지의 역할을 흔쾌히 수락했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에 갑작스런 호흡 곤란을 느껴 천안에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시기도 했지만, 응급처치 후 새벽에 예순의 나이를 택시에 다시 실고 내려와 주셨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에 후배들의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그외의 강사님들의 열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사료라고 해봐야 정말 차비에 오가며 밥 한 그릇 사먹으면 될 정도밖에 안 되는 돈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마다하지 않고 쾌히 와 주셨습니다. 새벽녘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상황실 쇼파에서 주무시는 백무산 선배를 보며 미안함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2박 3일 내내, 어떤 땐 잘 모르는 사람들을 불편케해 기획단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기도 했지만, 거의 뜬 눈으로 캠프의 아침까지를 지킨 박영근 선배의 그 끝모를 파행은 선배의 어떤 삶의 허기를 느끼게 하는 듯해 착잡하면서도 마음 따뜻했습니다. 임헌영 선생님은 전날 부산 행사 후 서울로 올라갔다. 도저히 안될 듯해 다시 새벽4시에 자는 사모님을 깨워, 태워다 달라했다고 합니다. 강의 시간인 아침 9시 30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인 아침 8시에 깨끗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술 덜 깬 얼굴로 선생님을 맞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열 여섯분에 이르는 강사 선생님들의 마음이 한결 같았습니다. 그 마음들이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라는 간절한 소리들로 들려 캠프 내내 긴장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강사 선생님들은 역할이라도 받아 안고 오셨지만, 그밖의 여러 노동문학 선배님들은 딱히 다른 역할 없이도 변함없이 캠프에 함께 해주셔서 이런 저런 빵구난 자리를 메꿰 주시며 좋은 말씀들 많이 나눠주셨습니다. 더불어 감사 드리는 마음입니다.
평가 시간, 참여했던 분들의 요청에 의해 제2회 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더 긴 만남을 위해 다음에 까페를 개설하기로 했고, 그 담당자까지 자천을 받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참여했던 분들이, 내년엔 우리 주변을 조직해서 함께 오겠다는 열의를 보여주었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노동문학을 지켜나가는데 조직적인 역할을 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참여자들간의, 진보적 작가들과 참여자들간의 연대를 더 깊게 만들지 못한 점에 대한 책임추궁도 신랄하게 해주셨습니다. 모두가 기쁨이었습니다. 작년 1회를 마치고, 2회를 맞으며 실제 이 자리가 대중적 참여가 보장되고 그 분들이 주인이 되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그간의 경험과 주변 상황을 고려할 때 캠프의 위상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려는 말끔히 가신 듯 합니다. 모두가 3회 노동문학캠프에 같이 하기로 했고, 주변까지 조직해 오기로 했고, 2회 참여자들이 역할을 맡기도 하자고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열정들이 1년 후 어떻게 나타날 지는 겸허하게 기다려야겠지만 시작은 충분히 밝은 미래를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을 꺽어놓지만 않으면 될 거라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루 전부터 직접 내려와 캠프 뒷바라지를 해 준 사이버노동대학의 김승호 선생님을 어떤 이는 학교 지키는 소사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허름한 작업복에 2박3일 동안 삽 들고, 망치 들고 다니셨으니 그럴 수밖에요. 노동문학하는 동지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레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하는 선생님 마음 참 힘이 되었습니다. 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인 민종덕 선생님은 부족한 재정을 걱정해 돼기고기를 무려 40근도 아닌 40Kg을 내주셨습니다. 직접 내려와 함께 해주셨고요. 전태일문학상을 지금껏 지키고 계신 늘 겸손한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았는지요.
아쉬운 분들을 모두 떠나 보낸 후, 뒷정리를 하곤 김승호 선생님과 양수미 수련원지기, 그리고 15명의 기획단도 드뎌 물안계곡으로 캠프(?)를 떠났습니다. 어린이캠프 진행으로 진이 빠진 동지들의 마음도 조금은 한적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정에도 없던 번개 앰티를 갖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여러 일들을 미뤄놓은 터였지만 마음을 바람 곁에 물소리 곁에 내려 놓았습니다. 백무산 선배가 고생한 사람들 밥 한끼라도 먹는 데 써달라고 15만원을 내줬고, 인천노문, 창, 작가회의 등에서 활동하다, 급작스런 뇌출혈로 큰 수술을 받고는 현재 요양 중인 김해자 선배가 캠프 떠나기 전날, 소중히 갈무리해 준 15만원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먼저 버스로 출발해야 했던 동지들께는 너무 미안하지만 이때가 가장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곤 올라 온 서울, 아남반도체 위원장으로 있고 현재 천막농성중인 이준님 참여자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 올라오면 본인이 고생한 벗들 밥 사겠다고. 마침 시장턴 터라 고기 사달라고 해서, 뽕을 빼먹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이번 캠프를 위해 많은 벗들, 동지들이 함께 해 주셨고 , 많은 이야기들을 나눠 갖기도 했습니다. 일일이 그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전할 수 없습니다. 이제 까페를 갖기로 했으니, 제가 다 못 전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함께 적어 나갈 우리들 내일의 이야기들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약속했듯 내년엔 좀더 알찬 내용, 알찬 진행, 알찬 만남. 함께 준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만남과 연대만큼 큰 힘이 노동자민중들에게는 없습니다. 저들은 자꾸 진정한 만남과 진정한 연대를 가로막으려 하지만 우린 참세상을 향해, 더 넓게 더 깊이, 더 전투적으로 수평적 만남과 연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도 올라와 보니 일이 산더미입니다. 르뽀 작업의 첫 신호탄인 청계천 도시빈민들의 삶의 기록인 '마지막 공간'을 잘 알려내야 합니다. 함께 활동하다 얼마전 불의의 사고로 죽어간 강지연 동지 사구제가 다시 이번주입니다. 하반기로 잡고 있는 르뽀문학교실, 여성노동자글쓰기 교실 등을 준비해 가야 합니다. 현재 마감 상태인 창 40호를 알차게 내야 합니다. 등등.
하여 캠프의 긴 기억을 문학적으로 표현할 시간이 저에겐 많이 없습니다. 거칠게 요약한 것 용서들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다른 무엇보다 사랑의 마음 전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지지말고 참해방세상, 참민주사회, 참문학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추신 김성만 형과 노래패 소나무 분들께도 더불어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 송경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