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길에 소리를 지르며 전에 배웠던 단가를 연습하는 정도의 수준인 나에게 백일공부는 사실 과분한 여정이었지만 나의 간곡한 부탁에 김연 교수는 흔쾌히 응해주었고, 나는 감지덕지하며 한대목이나마 득음을 해보겠다는 작은 소망을 안고 짐을 꾸려 백일공부 장소로 향했다.
소리공부 장소는 전북 장수군 장계면 신기마을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학우정(學友亭). 김연 선생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던 분이, 소리공부 하라고 대여해준 별장이라 했다.
산속은 아니지만, 조용한 시골마을이었고, 더운 여름이었지만,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반산반야의 산촌이었다. 예로부터 명창들은 득음하기 위해서, 인가로부터 떨어진 산이나 계곡, 굴 또는, 절이 있이 있는 산중에 들어가 득음하기 전까지는 몇 달이고 나오지 않았다.
판소리에서 득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 완성의 가장 핵심적인 과정으로, 스승으로부터 배운 ‘전승형’을 자신의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목’을 얻는 단계이다. 소리꾼들은 일생동안 몇 번, 또는 몇 십번이고 이러한 독공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부분 무속 집안의 전문 소리꾼이었던 소리광대들은, 제의의 통과의례처럼 세속으로부터 분리(separation)되고, 문지방을 뜻하는 전이(limen)과정을 거쳐, 새로운 경지에 들어 일상사회로 돌아오는 재통합(re-aggregation)의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나는 입소하자마자, 선생님으로부터 춘향가 중 “쑥대머리” 한 대목을 받았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에 이르는 김연 교수의 제자들과 함께,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소리를 외우고 또 외우고, 부르고 또 불렀다.
소리공부 장소는 교수실 공간과 연습실 공간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었다. 교수실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거나 교정 받으면, 연습실에서 모여 연습을 하는 방식이었다.
청이 좋지 않고 높은 음이 잘 나오지 않는 나는 높은 음을 내기 위해 소리를 힘껏 질러야 했는데, 오랜 동안 소리를 해 와서 어느 정도 목이 다져진 어린 학생들에게 소리를 내기가 부끄러워 몰래 빠져나와 산속 공터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다.
옛날에는 선생으로부터 소리를 한 두 구절씩 배워서는 꼬박 연습해서 다음날 스승 앞에서 소리를 해보였다는데, 요즘엔 녹음기가 있어서 그나마 편리했다.
/다음호에 계속
/고창코리아 07.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