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며

[인터뷰]쌍용차 굴뚝농성 삼인방을 만나다

참된 2009. 5. 16. 21:15

 

 

 

 

"살아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쌍용차 굴뚝농성 삼인방을 만나다

 

미디어충청  2009-05-15 오전 6:07:49

 



70미터 굴뚝 위의 밤공기는 차가웠단다. 13일 밤 평택의 기온은 10.5℃. 든든히 입고 고공농성에 돌입했어도 해가 진 녘의 밤바람은 아직 쌀쌀했을 것이다.

고공농성 첫날밤부터 쌍용차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쌀쌀한 밤바람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 다치기도 해 동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쌍용차지부 김을래 부지부장은 굴뚝으로 올라가던 중 무릎이 찢어져 굴뚝에서 3바늘을 꿰맸고, 비정규직지회 서맹섭 부지회장은 회사가 농성을 하지 못하게 설치한 용접을 해체하던 중에 눈에 이물질이 조금 들어가 안약을 넣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들은 인터뷰 도중 “괜찮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무수한 연대투쟁이 있었지만 원,하청 노동자가 뜻을 모아 고공농성에 돌입한 적이 또 있었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굴뚝 위의 투쟁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고공농성 이틀 째인 14일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쌍용차 공장이 시끌벅적했다. 노동자들은 오전, 오후 2시간씩 돌아가며 파업을 벌였고, 굴뚝 아래에서 집회도 열었다. 가족대책위는 공장과 평택 시내를 돌며 선무방송을 했고, 노동자들과 평택시민들은 저녁7시 평택역에서 촛불을 들었다. 정문을 기준으로 양쪽 길가는 천막으로 즐비했고 천막안의 풍경 역시 노동자들은 투쟁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자동차 라인 돌아가는 소리만큼이나 정리해고 철회 투쟁으로 바쁘고 시끌벅적한 쌍용차 평택공장. 미디어충청은 그 가운데 고공농성엔 돌입한 노동자들과 전화로 만났다.

 

가족대책위가 정문에 천막을 설치하고 활동하고 있다.

 
천막안 풍경.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굴뚝농성은 첫째로 희망퇴직에 맞서 분명한 반대를 표하는 투쟁이다”
-쌍용차지부 김을래 부지부장


무릎을 다치셨죠. 괜찮으세요?

밤늦게 의사가 굴뚝까지 올라와 세바늘 꿰매 줬어요. 피도 멈췄고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굴뚝이 높아 쉽지 않았겠어요.

회사에서 굴뚝 주변을 모두 용접해 놓았는데 새벽에 용접을 모두 해체하고 올라왔습니다. 올라갈 때 조합원들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굴뚝농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정리해고 완전 분쇄, 희망퇴직 철폐, 정규직-비정규직 총고용 보장,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며 굴뚝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회사는 일방적인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을 통보했는데 18일이 희망퇴직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는 1차적으로 희망퇴직 시기 회사에 맞서 분명한 반대 전선을 쳐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굴뚝에 올라왔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총고용을 보장하며 굴뚝 농성에 돌입한 것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갖습니다. 그 동안 전국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이 공동으로 고공농성에 돌입한 적은 없었죠.

가족들이 보고 싶으실 텐데

가족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전화 통화 두 번 했네요(웃음). 아이들은 아빠가 굴뚝에 올라온지 모릅니다. 제가 아내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 시기이고 함께 있지 못해 미안하고……. 굴뚝으로 올라오기 하루 전에 모두 모여 밥을 먹었는데 큰아이는 눈치 챈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처음엔 마음이 그랬나 봅니다.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하니 아내가 저에게 승리해서 보자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큰 힘이 되었죠.

동료들과 시민,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금속노조가 22일 확대간부 파업을 결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단결과 연대로 이 투쟁 승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 국민에게 호소하면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쌍용자동차의 분사를 추진한다는 것은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쌍용차 문제만이 아니라 대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정부는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분사… 이젠 정규직도 안전하지 않다”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서맹섭 부지회장


눈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굴뚝 입구 용접 해체할 때 눈에 뭐가 많이 들어갔나 봅니다. 괜찮습니다. 참을만합니다.

강제휴업, 정리해고, 업체폐업… 비정규직에 대한 탄압이 거세요

네.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 투쟁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도 이제 고용에서 안전할 수 없습니다. 2405명의 정리해고는 정규직을 실업자로 만들고 비정규직으로 취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분사 또한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시키겠다는 것의 일환이죠. 아니, 애초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없었죠. 그 차이는 임금과 고용. 우리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정부와 회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만들었죠.

굴뚝농성 전 동료들에게 편지를 남기셨어요. 마지막 각오라고…

네. 마지막 각오로 올라왔습니다. 투쟁이 승리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올라왔습니다. 더 이상 밀리면 안 됩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똘똘 뭉쳐 연대해주세요. 
 

고공농성자들이 무전기를 통해 동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고공농성장을 바라보는 노동자들. 노동자들이 오전, 오후 2시간씩 파업을 하며 굴뚝 아래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쌍용차 분사 안 된다”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김봉민 부지회장


농성 첫날밤, 어땠나요?

옷도 든든히 입고 덮을 것도 준비했는데 일교차가 심해 바람이 불더군요. 조금 추웠습니다. 동료들이 때마다 식사를 올려줘 잘 먹고 있어요. 용변 보기가 불편한데 그것도 잘 해결하고 있습니다. 우리 노조, 동료들 정말 대단해요. 태양열을 이용해 굴뚝 위에서 핸드폰도 충전시키고 있습니다.(웃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올라오기 전에는 갈등도 많았어요. 누구나 그러잖아요. 그럼에도 70미터 굴뚝으로 올라온 건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싸워야 한다는 당당함 때문이죠.

회사가 12일 분사 공고를 냈어요. 정비쪽은 남다를 것 같은데

2002년 대우자동차가 분리매각 되고 쌍용자동차로 넘어오면서 분사가 많이 이루어졌죠. 당시 회사의 ‘분사를 통한 서비스망의 확충으로 고객만족을’ 이란 논리로 분사를 추진했죠. 당시 정비쪽은 쌍용, 대자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어려운 싸움을 전개했어요.

그러나 분사는 오로지 개인 영리 목적을 위해 시행되는 것입니다. 특히 ‘서비스’ 쪽은 직영이 얼마만큼 확충되느냐에 따라서 서비스의 질이 틀려집니다. 직영에서 하는 서비스야말로 진정한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기 회사가 분사 공고를 낸 것은 정비쪽 뿐만 아니라 쌍용차 전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려는 얄팍한 술수입니다. 쌍용차의 진정한 회생은 정리해고가 아니라 총고용을 보장하고, 직영을 확충하는 것입니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굴뚝 농성에 3명이 돌입했지만 금속본조, 지부, 지회, 정규직-비정규직, 그리고 지역을 뛰어넘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속을 뛰어넘는 투쟁을 만들고, 전국의 모든 동지들이 쌍용차 대량의 정리해고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연대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의 동지들에게 엄호받지 못한다면 전선이 무너질 수도 있겠죠. 그동안 쌍용자동차도 단사를 뛰어넘는 투쟁을 하지 못했던 잘못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쌍용자동차 투쟁이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고, 구조조정과 노동탄압으로 일관하는 정부 정책에 맞서 싸우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재은 기자)

 

미디어충청 / 2009-05-15 오전 6:0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