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김재기씨 분신 사망, 지역단체들 “도급화 계획 철회하라”
금호타이어 김재기씨 분신 사망, 지역단체들 “도급화 계획 철회하라”
16일 금호타이어 김재기(43)씨가 분신 사망하자 지역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금호타이어 사측에 도급화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대표지회장 허용대, 노조)는 17일 오전 10시30분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열사의 분신은 워크아웃을 졸업하고도 도급화를 계속 추진한 회사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며 "(회사가 도급화 철회 등 요구를 거부한다면) 설 휴무 특근 거부를 시작으로 투쟁의 강도를 높여나갈 것"이라 밝혔다.
또한 "금소노조, 민주노총,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금호타이어 박삼구 회장에 대한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봉주 민주노총 광주본부장, 심종섭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장, 허용대 대표지회장, 신호식 곡성지회장, 오효열 광주시농민회장, 윤민호 전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위원장, 강은미 정의당 광주시당 위원장을 비롯해 2백여명의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가 함께 했다.
이들은 "유서와 함께 '도급화 결사저지를 위한 조합원 서명 결의서'가 발견됐다. 서명 결의서는 열사가 직접 만들어 조합원의 서명을 받은 것"이라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도급화를 즉각 철회하라는 것이 열사의 분명한 요구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열사의 분신은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졸업했음에도 도급화를 계속 추진한 금호타이어 회사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며 "회사는 작년 12월 워크아웃 졸업 이후 나머지 76개 중 48개 직무마저 도급화하려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열사를 포함해 19명이 속한 스프레이-운반 업무도 도급화 대상"이라며 "회사는 해당 직무의 정규직을 다른 업무로 전환배치 시킨 후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울 예정이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2014년 단체교섭에서 노조는 워크아웃 종료에 따라 도급화 중단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48개 직무에 대해 도급화를 도급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며 "2010년 합의서는 도급화를 2014년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2010년 당시 합의서의 효력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측은 지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갈 당시 노사합의에 따라 지난 4년 동안 597개 직무 가운데 521개(87%)를 단계적으로 도급으로 전환한 바 있다. 노조는 지난달 2014년 임단협 타결 뒤 도급화를 막기 위해 지난 3일 광주지방법원에 도급화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해 법적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회견에 앞서 허용대 노조 대표지회장은 "이 모든 책임은 박삼구 회장과 회사에 있다"며 "경영을 잘못해서 경영위기 상황을 초래했고, 노동자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정상화 하는 과정에서 도급화를 추진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2014년 임단협 마무리 시기 도급화 중단을 요구했고, 광주시에서도 도급화 추진을 중단하라고 중재한 적도 있다"면서도 "회사는 워크아웃 졸업 이후에 노사관계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서라도 도급화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고 김재기씨의 동생은 기자회견에서 "도급화가 무엇인지 어제밤에 알았다. 형이 어젯밤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금호타이어를 지켜봐주시기 바란다. 형의 안타까운 죽음을 가정불화로 치부하는 어떤 세력이 있는데 정신차려라"라고 울분을 토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노조는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위 구성 등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광주·전남지역 노동계와 시민사회 또한 설 연휴 빈소 운영 계획을 짜며 2010년 이후 5년만에 다시 연대투쟁 채비를 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사측 관계자는 "도급화는 2010년 노사가 합의한 내용"임을 강조하면서 "도급화한다고 해서 신분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적성 등을 고려해서 협의를 통해 전환배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는 장례절차 등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노사 협의를 통해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 밝혔다.
한편, 노조 곡성공장 2부 5과 대의원인 고인은 지난 16일 밤 9시8분께 분신한 것으로 추정되며 7분여 뒤 본관동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업무직(사무직) 직원이 발견해 119, 경찰 등에 신고했지만 119 등이 도착하기 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제가 죽는다 해서 노동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우리 금타(금호타이어)만은 바뀌어졌으면 하는 제 바람"이라며 "동지들 부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저 세상에서 저도 노력할게요"라는 유서를 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빈소는 만평장례식장(광주 광산구 우산동) 3층에 마련됐으며, 유가족의 위임을 받은 노조가 사측과 장례일정과 절차 등에 관해 사측과 협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