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며

[이남신 칼럼] 지옥도를 벗어나기 위해 씨앤앰 꼭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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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신 칼럼] 지옥도를 벗어나기 위해 씨앤앰 꼭 이겨야 한다

참된 2014. 12. 20. 19:11

[이남신 칼럼] 지옥도를 벗어나기 위해 씨앤앰 꼭 이겨야 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발행시간 2014-12-17 12:57:48 최종수정 2014-12-17 12:57:48     민중의 소리

비정규직 노동자 1000만.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 49.7%(2014. 8 기준). 사회보험은 정규직 대비 1/3, 사내복지는 정규직 대비 1/4에 불과한 비정규직. 비정규직 노조조직울 2~3%. 늘어나는 변형 불법고용형태인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 줄어들지 않는 최저임금 사각지대. 연애,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4포 청년 세대.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 비정규직으로 퇴출되는 비정한 노동시장. 2014년 한국 1900만 노동자들의 실상이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게 갈수록 참담하고 위태롭다. 추운 겨울 이 땅의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곡기를 끊어야 한다. 기약없이 연달아 하늘로 올라간다. 원통하지만 도리없이 삶을 놓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상은 차별과 고용불안으로 온통 뒤숭숭하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단두대에 올라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냥 불안하다. 땅콩서비스 때문에 재벌3세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노조활동 때문에 목숨을 던져야 한다.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 아래 속절없이 인건비를 빼앗겨야 한다. 초단기계약으로 정규직화를 회피하는 자본의 꼼수에 꼼짝없이 짓눌린다. 84번 계약을 반복 갱신하고도 일용직이라고 잘린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제멋대로 남용하는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불법/탈법/편법을 밥먹듯 해온 자본가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데, 아무 죄 없는 노동자들은 권리를 외치기만 하면 공권력이 낚아채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간다운 얼굴을 한 자본주의마저 까마득한 암울한 현실이다.

굴뚝 위에서 인사하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13일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안 70m 높이의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 이후 쌍용차 사측이 교섭을 받아 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정의철 제공

역주행하는 정부, 국회, 사법부, 언론

전국 도처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버겁고 힘겹다.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의 공장굴뚝 고공농성이 200일을 훌쩍 넘겼다. 10년을 싸워오다 끝장단식투쟁을 결의한 코오롱 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은 건강 악화로 눈물을 머금고 42일째 단식을 종료했다. 26번째 희생자가 생긴 날 쌍용차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다시 공장굴뚝에 올랐다. 최종범, 염호석 열사를 가슴에 품고 싸워온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원하청 자본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 막걸리인 생탁을 만들어온 노동자들의 파업이 7개월을 넘겼다. 서울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시중 노임단가 적용을 요구하며 양주톨게이트 앞에서 50일째 싸우고 있다. 이만수 열사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현대아파트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경비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 최저임금 감액 적용 해소로 전국 25만 경비노동자들이 대량해고 위기 앞에 떨고 있다. 공공기관인 부산시 보건소는 연말에 3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겠다고 으르고 있다. 그리고 서울 도심 한복판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인 임정균 동지와 강성덕 동지의 고공농성은 오늘로 36일째를 맞고 있다. 지상에서 홀대받고 배제되어온 노동자들이 하늘에서 깃발이 되어 펄럭인다.

사회 양극화의 근본 요인 중 하나인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심화는 자본가들의 배를 불려온 핵심 착취기제였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제가 도입되면서 한국 사회는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위에 거대한 피라미드식 먹이사슬 경제구조를 구축했다. 노동자간 경쟁을 극대화하면서 모든 고통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이주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 일자리 보전도 위태로운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을 외면했고 종종 자본가와 영혼 없는 담합을 하기도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모두가 나부터, 아니 나만이라도 먹고 살자고 아우성치면서 서로를 옥죄었다. 자본과 권력이 명백한 주범이지만 그들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생존의 공포와 구조적이고 영속적인 차별에 기반한 비인간적 정글공동체의 정문에 신자유주의 대한민국 명패가 걸렸다. 이후 여러번 정부가 바뀌었지만 줄곧 노동자들의 삶은 지옥도에 가까웠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빌딩 앞 씨앤앰 해고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빌딩 앞 씨앤앰 해고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정부는 역할을 포기했다. 소득 주도 경제성장 운운하더니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과 파견업종 확대를 거쳐 정규직 해고 완화를 강변한다. 고의적이고 노골적인 친자본 친재벌 역주행이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국회도 이미 민의의 전당이 아니다. 자본가들을 비롯한 가진 자들의 이해를 앞장서 대변하기에 바쁘다. 사법부의 권능도 무너졌다. 쌍용차와 YTN의 정리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합법 판결은 대법원 역사에 가장 치욕스런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대법원 판결을 깔아뭉갠채 꼼수만 부리고 있다. 주요 언론방송도 사회의 공기로서 제몫을 포기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현장에 평소 취재기자와 카메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죽고 농성하고 집단행동으로 나서야 비죽이 얼굴내민다. 이게 국가인가. 이게 공동체 맞는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배반하는 일상이 수많은 국민 아닌 국민의 마지막 남은 인내심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 우리 모두가 마주한 대한민국은 1%가 99%를 생존의 벼랑끝으로 송두리째 몰아가는 재벌왕국일 뿐이다.

2014년 오늘 노동자들 앞에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어떤 결단이 절박하게 요청되고 있다.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폐해에 대해 공감하지만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용두사미로 그치고 만다. 결국 자본으로 현저하게 치우친 기형적인 남한 자본주의의 정상화가 불가능하다. 다행히 청신호는 있다. 앞선 노동자들이 파업과 고공농성으로 싸우고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가 걸린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분투하고 있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몸부림으로 자본과 권력에 옹골차게 맞서고 있다.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도 깨지기 십상인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삶을 응원하며 대변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각성과 참여를 환기시키고 있다. 고립된 싸움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추동하는 싸움으로 나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 민주노총이 함께하는 투쟁

노동자 지옥도를 벗어나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들어갈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결절점에 씨앤앰 투쟁이 놓여있다. 패배와 좌절의 연속인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의 지난한 현실을 뚫고 한번은 제대로 이겨야 하는 지금, 승리에 가장 가까운 투쟁이다. 어디든 이겨서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전령사가 필요한 지금, 씨앤앰은 이미 희망의 전령사가 되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로 똘똘 뭉쳤다. 해고노동자와 비해고노동자가 단결했다. 자본의 아성인 수도 서울에서 시민사회와 지역사회가 가장 폭넓게 연대했다. 노동운동 역사에 남을 단결투쟁의 모범을 이미 씨앤앰 노동자들은 4년에 걸쳐 증명해왔고, 오늘도 고공농성투쟁과 총파업을 통해 ‘노동자는 하나’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씨앤앰 원청사용주 사모펀드 MBK와 맥쿼리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교섭하자더니 시간 벌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돈에 눈멀어 노동자들을 짓밟는 투기자본에게 노동자들의 분노를 되돌려줘야 한다. 노동자들의 피눈물과 고통과 한숨을 투기자본가들이 알리 없다. 인간답게 살고싶은 노동자들의 소박한 염원을 불온하게 여길 뿐이다. 이제 160일이 넘도록 길거리에서 노숙농성해온 노동자들을 외면한 자본의 논리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 씨앤앰 노동자들이 씨앤앰 투쟁에 연대한 모든 이들과 함께 오랜 계급투쟁의 역사가 증명한 것처럼 천민자본가들에게 단결과 연대투쟁으로 진짜노동자의 위대한 힘을 일깨워줘야 한다. 중세 프랑스대혁명의 주체였던 제3신분 평민들처럼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유일한 미래 대안임을 보여줘야 한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빌딩 앞 씨앤앰 해고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빌딩 앞 씨앤앰 해고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어제 80만 민주노총의 대표인 신승철 위원장이 삭발했다. 파업주체인 희망연대노조를 대표해 씨앤앰 정규직인 최문호 위원장이 삭발했다. 109명의 부당해고자와 함께 고통받고 있는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해 김영수 지부장이 삭발했다. 씨앤앰 비정규직 지부 박석훈 부지부장과 이일용 부지부장, 씨앤앰 정규직 지부 김정필 미디어원 지회장도 삭발에 동참했다. 해고자인 강성덕 동지와 비해고자인 임정균 동지의 삭발을 시작으로 15명의 씨앤앰 정규직 지부 간부들이 뒤따라 삭발 결의에 동참한 이후 어제까지 23명이 삭발했다. 엄동설한에 고공농성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하루빨리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씨앤앰 투쟁이 승리해야 한국 사회가 노동 존중 사회로 탈바꿈하는 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씨앤앰 투쟁이 승리해야 통신 비정규직과 여러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연이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노동자투쟁 승리의 마중물 역할을 지금 씨앤앰 투쟁이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1900만 노동자들의 미래가 걸린 씨앤앰 투쟁을 민주노총이 책임지는건 당연하다. 단결투쟁의 모범인 이 투쟁의 마무리를 민주노총이 책임질때 가장 어려운 처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위원장 임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노동자 생존권 쟁취가 우선이기에 이런 저런 고심 다 내리고 머리를 깎은 신승철 위원장의 결의가 빛난다. 민주노총을 민주노총답게 바꾸겠다는 막판 결기에 진정성이 뚝뚝 묻어난다. 씨앤앰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를 대표한 20명 노조 간부들의 삭발이 가진 의미도 남다르다. 이제 민주노총과 희망연대노조를 필두로 ‘씨앤앰 사태의 올바른 해결과 부당해고자 전원복직,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시민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더욱 굳건하게 이 투쟁을 뒷받침할 때다. 씨앤앰 사태 주범들을 반드시 응징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신시대를 앞당기는 역사적인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온힘을 모아야 한다. 수은주가 뚝 떨어져 고공농성투쟁 동지들의 건강과 안위가 더욱 걱정되는 지금 인간의 도리와 동지애로 힘모아나가야 한다. 한 번은 정당한 노동자 투쟁이 이길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