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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11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새벽녁 동터오는 조선소 바닷가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
ⓒ 윤성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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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1일, 1차 희망의 버스가 출발하던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만났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려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그간 빌려 쓰던 사무실 청소를 깨끗이 해두고 나간 날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만 결의하자'고 했습니다.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연행되면, 부산에서 희망의 버스는 출발하지 않는다는 각오 하나로 내려가자고 했습니다. 당신은 몇 호차에 앉아 불안한 잠을 새근새근 청했던가요.
아름답던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밤 12시. 당신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어느 길에 서 있었나요. 어떤 사다리를 넘었나요. 어떤 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그 권력과 자본과 사제폭력의 벽을 훌쩍 넘었나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새벽녘 동터오는 조선소 바닷가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날라리들의 공연에 맞춰 신나는 춤을 추며, 깔깔깔 웃다가, 미어지는 눈물을 훔치며 우린 어떤 꿈을 꾸었나요. 낮 12시까지 행사를 마치면 사법처리를 최소화하겠다는 경찰들의 협박에 '잘됐다, 모두 다 연행하라'고, '우리는 밥을 먹고 나가야겠다'고 단호하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모두가 눈물 바람을 하며 작별의 인사를 하고 나오던 길, 해고자 부인들이 아이들을 곁에 세우고 하나씩 나눠주던 그 천 원짜리 양말을 아직도 갖고 계신지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난해 6월 15일, 전격적으로 전국 희망의 버스 185대를 움직이기로 결정했을 때, '해보자'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전국의 어느 곳에선가 그 시대의 소리들에 공명해 사람들을 모으고, 결국 '희망의 버스 195대'라는 기적을 함께 일궈냈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보름 만에 <깔깔깔 희망의 버스>라는 멋진 책을 만들어줬던 당신을, 소금꽃 천리길을 싸목싸목 걷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대한문 앞 단식농성장을 찾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최루 물대포에 맞섰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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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벽 아래에서 최루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사진은 지난해 7월 10일 부산).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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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9일, 폭우를 맞으며 부산역에서 봉래동 로터리까지 걸어갈 때 언뜻언뜻 마주쳤던 당신의 한없이 진지하고 선한 눈동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차벽 아래에서 최루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벽 1시께 마침내 끌려가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토끼몰이에도 밀리지 않고 다시 대열을 짜맞추고 우리도 끌려가겠다고 연좌하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우고 폭염의 거리 여기저기서 지친 채 잠들었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퀭한 눈으로 힘없이 벽에 기대앉아 있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굴하지 않고 책을 나눠주고, 그림을 그리고, 풍물을 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대표단을 구성하면 85호 크레인까지 다녀오게 해주겠다'는 경찰의 야비한 제안에 '우리는 따로 대표가 없다'고, '함께 가지 못한다면 가지 않겠다'고 뜻을 모아주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5000인분의 오뎅탕을 빼앗기고 허탈해하던 당신을, 연잎밥을 싸왔던 당신을, 비빔밥을 만들어 왔던 당신을, 만두차를 끌고 왔던 당신을, 밥차를 끌고 왔던 당신을, 어린이책을 한 차 가득 싣고 왔던 당신을, 휠체어를 싣고 왔던 당신을, 약국과 진료소를 꾸려줬던 당신을, 인권지킴이로 뛰었던 당신을, 거리강연회를 준비해 왔던 당신을, 인디밴드들의 공연마당을 꾸렸던 당신을, 청소년 마당을 꾸려왔던 당신을, 퀴어 퍼레이드를 준비했던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희망의 휴가'를 떠났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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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이 만나 수백 개의 풍등을 어둔 밤하늘로 올리던 당신의 아름다운 소망을 만나고 싶습니다(사진은 지난해 7월 31일 부산).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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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30일, 부산역 광장에서 다시 마주쳤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려가기 전 한진 본사 앞에서 24시간 끊이지 않는 릴레이 시위를 하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황금연휴에, 뙤약볕에, 수해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1만 명의 관제 데모가 준비되고 있다는 부산으로 누가 얼마나 오겠냐고 했지만, 더 많은 벗들과 함께 '희망의 휴가'를 떠났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 CT 85 >라는 멋진 사진집을 만들어줬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영도로 들어가는 모든 다리가 전면 통제됐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벽녘까지 걸어 걸어 산등성이를 넘어오던 긴 행렬 속, 고단한 시대의 언덕배기를 힘겹게 넘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기어이 만나 수백 개의 풍등을 어둔 밤하늘로 올리던 당신의 아름다운 소망을 만나고 싶습니다. '오히려 고립된 것은 너희들'이라고, 부산경찰청을 에워싸고 피켓 시위를 하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버스도 부담이 돼 봉고차를 빌려 내려온다던 이주의 푸른 눈의 당신을, 나는 못 가지만 형편 때문에 못 가는 분들을 위해 써달라고 후원의 마음을 보내주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세계의 곳곳에서 희망의 버스를 지지해주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다른 세상을 향해 깔깔깔 웃었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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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한 시대 전체를 바꿔보자고 서울로 내달려왔던 소중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사진은 지난해 8월 28일 서울).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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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7일, 한진을 넘어 제2의 촛불로 나아가자고, 이 불의한 시대 전체를 바꿔보자고 서울로 내달려왔던 소중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모든 비정규직들의 행진'에 나섰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십수 년 평지에서 쫓겨나 하늘로 하늘로 올랐던 이들을 모아 '고공클럽'을 만들어주었던 당신을, 자신의 사업장 문제를 넘어 장기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을 꾸려, '광화문의 소금꽃밭'을 만들어줬던 당신을,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서울 시내를 행진하던 당신을, 새벽녘 희망의 인왕산 산행에 나서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다른 세상을 향해 깔깔깔' 지금 생각하면 이름도 참 그렇지만,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난해 10월 8일, 5차 희망의 버스를 준비하며 기발한 시위, 생방송 '희망버스라 부르고, 희망부스라 읽는다'가 진행될 때, 유모차에 조남호를 태우고 1인 시위를 하며 '막힌 귀를 뚫어주마'라고 조남호의 귀에 붙은 뚜러펑을 떼어내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재미있어하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김진숙, 정홍형, 박성호, 그리고 김영제가 살아내려 오지 않는 한, 한진의 조남호가 무릎 꿇지 않는 한, 희망의 버스는 이제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내줬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아 1만 부 5개 국어로 된 홍보 소책자를 만들어줬던 당신을, 영화인 1546명 선언을 만들어줬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다시 59명이 연행되던 남포동 사거리에서 양철북처럼 작은 북을 두드리며 전진하던 당신을, 눈물짓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남들은 꿈이라고, 현실을 모른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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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사진은 지난해 7월 31일 부산).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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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만나지 못했던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다시 쌍용자동차 '희망텐트'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의 발걸음'으로, 경기지역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지키는 '희망의 김장'으로, 시청광장에 Occupy 농성장을 꾸린 '희망의 광장'으로, 제주 구럼비를 향하는 '평화의 비행기'로, 경남 밀양의 '탈핵 희망버스'로, 강원도 '골프장반대 희망버스'로, 도시 빈민들의 '희망의 수레'로, 희망의 정치노선으로, 또 어떤 희망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나갔던 당신의 굳은 마음을, 지치지 않는 마음을, 더 낮고 치열한 연대의 마음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정말,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거덜나버린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으로 나서고 있는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말과 논리가 아닌 실천으로, 어둠이 아닌 밝음으로, 권력과 권위가 아닌 수평으로 나아가던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6월 16일, 토요일 오후 1시입니다. 언론노조의 희망캠핑장이 있는 여의도 공원에서 '22명'이라는 가슴 아픈 숫자를 안고 있는 대한문 분향소까지 거북이 마라톤 같은 걷기대회를 준비했습니다. 이날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22명의 슬픔을 걷어내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간 살처분당한 수백만 명의 정리해고자들, 900만 명에 이른 비정규직 인생들의 아픔들을 걷어내는 날입니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폭압적인 일상의 탄압과 질서 속에서 새로운 사회공동체는 가능치 않을 것이라는, 우리 마음 속에 도사린 시대와 역사에 대한 패배감을 걷어내는 날입니다. 지난해 희망의 버스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사법탄압을 받고 있는 150여 명의 승객들의 고립감을 걷어내고, 함께 응원하며 지키는 날입니다. 저녁에는 '집회할 자유, 연대할 권리'를 확인하는 1박 2일 난장이 이어집니다.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짧은 시간에 1만 명의 별들을 모아 다시 하나의 은하수로 만드는 것을 '꿈'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을 모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시 꿈을 꿔봤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16일의 연대와 희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당신이 없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척이나 외로울 것입니다. 그곳에 아름다운 당신이 빠진다면 우리의 빛은 그만큼 옅어질 것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당신을 불러봅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누군가를 다시 불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를 모아 이 불의한 시대를 넘어,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면 좋겠습니다. 조금은 더 평화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로 우리 모두가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에 다시 끌려가야 한다면 기쁘게 끌려가겠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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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6 희망과 연대의 날 웹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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