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사람
‘1인시위 창안’ 윤종훈 회계사, 신촌에 짬뽕집 차린지 3개월… (2010.6.1)
참된
2012. 12. 26. 01:26
‘1인시위 창안’ 윤종훈 회계사, 신촌에 짬뽕집 차린지 3개월…
글 유인경·사진 김창길 기자 alice@kyunghyang.com 경향신문
입력 : 2010-06-01 17:50:35ㅣ수정 : 2010-06-02 01:40:12
ㆍ“먹고 살 걱정 없어야 신념 지키죠”
ㆍ현 정권 견제받자 수입 격감… 부득이 피켓 대신 창업 선택
ㆍ“훈수보다 경영실전 진땀 나”
오후 3시. 서울 신촌역 부근의 짬뽕집에서 한 중년 남성이 점심 끼니를 놓친 손님을 위해 짬뽕을 만들고 있다. 빨간색 티셔츠 차림에 짬뽕 그릇을 공손하게 손님 앞에 내려놓는 이는 윤종훈씨(49). 동글동글한 얼굴에 익숙한 손놀림이 짬뽕과 잘 어울리지만, 그는 정부와 재벌을 준열하게 비판하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이자 국내 유수 법무법인 소속 회계사였다. 1인시위를 창안해내 시위문화에 새로운 역사를 쓴 주인공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이 감세정책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탈당하기도 했던 그는 요즘은 정치보다 날씨에 관심이 많다. 날씨가 쌀쌀하거나 흐려야 짬뽕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흐렸던 지난달 25일, 상하이짬뽕집에서 회계장부와 피켓 대신 짬뽕 그릇을 든 그를 만났다.
-지난 3월 개업했는데 장사는 잘됩니까.
“먹는장사로 먹고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식당은 목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골목에 가게를 열어서인지 아직은 손님이 많지 않아요. 세트메뉴도 개발하고 인근 연세대·이화여대에 전단도 뿌리는 등 마케팅에도 신경을 씁니다. 하루 종일 손님이 언제 올까 기다리면서, 기다림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란 걸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3500원짜리 짬뽕 한 그릇 드시러 오는 분들이 정말 고맙고 반가워요.”
-왜 짬뽕집을 열었습니까.
“돈 때문이죠. 현 정부 들어 진보성향 인사나 시민단체에 대한 정권의 견제가 상상 이상으로 심합니다. 하물며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은 더 심하겠죠. 회계사는 기업들을 상대하는데 기업들이 일을 안 맡기니 버틸 재간이 없어요. 법무법인에서 받는 수입과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연구용역비로 생활해왔는데, 수입이 너무 줄어 생계를 꾸리기 힘들었습니다. 큰아들이 올겨울 제대해 대학에 복학할 예정이고, 둘째인 딸은 고2예요. 한창 돈이 들어갈 때죠. 애초엔 보쌈집을 열고 싶었는데 예금 깨고 은행 대출도 받았지만 창업자금이 부족해 조그만 짬뽕집을 열었어요. 생계유지가 안되면 제 신념이 바뀔 것 같아서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이자 수단으로 짬뽕집 주인이 된 겁니다.”
-작은 가게지만 최고경영자(CEO)가 되어보니 어떤가요.
“재벌을 비판하고 CEO의 자문 역할만 해주다가 직접 해보니 훈수 두는 것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실감합니다. 일단 제가 경험한 세계와 요식업계의 이론과 질서, 관행이 너무 달라요. 주방장이 홀연히 사라지질 않나, 날씨가 좀 더우면 매출이 뚝 끊기질 않나…. 앞으로 돈 많이 벌어 직원들 복지도 신경쓰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싶습니다.”
-회계사라는 따뜻한(?) 직업이 있는데도, 춥고 험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1980년 대학에 입학했어요. 엄혹한 시기에 대학을 다니다 회계사가 되었죠. 분식회계가 관행이던 시절이고, 다국적기업들의 기업사냥이 심할 때라 법대로, 양심적으로 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더군요. 94년에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어 소액주주운동을 시작한 것은 회계사로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왜 그렇게 눈 부릅뜨고 삽니까. 대학에서 제적된 후엔 정비공에 택시 운전기사를 했고, 얼마 전에는 영어학원도 운영했는데요.
“제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나 봅니다. 생긴 대로 살 뿐이죠. 가끔 ‘1인시위만 안 했어도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며 그럭저럭 먹고는 살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긴 합니다만….”
-1인시위도 벌써 10년 전 일이군요. 그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당시에 왜 재벌들에게 제대로 과세를 안하느냐고 부지런히 언론에 기고도 하고 정부에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도 놓았죠. 단식농성을 할까 어쩔까 고민하다 혼자라도 항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혼자 시위하면 집시법 위반인지 잘 몰라서 법조인들에게 문의해보니 1인은 ‘다수’가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얻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꽥!’ 소리라도 질러보자며 혼자 국세청 앞에서 시위를 했는데 그게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시위문화의 새로운 유형이 된 겁니다.”
-1인시위를 통해 ‘과격한 진보’로 규정된 면이 있습니다. 후회는 없나요.
“생계에 지장을 주니 때론 후회됩니다만, 1인시위는 제게 더 큰 선물을 줬습니다. 그 무렵 큰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9시뉴스에 톱기사로 나와서인지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런 훌륭한 분도 있다’며 제 이야기를 한 모양입니다. 물론 제 아들인 줄은 모르셨죠. 아들이 그 일을 계기로 저를 존경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사교육도 못 시켜 미안한데 아들은 고액과외로 명문대에 들어간 것보다 떳떳하다고 합니다. 새침한 딸도 짬뽕집 개업기사가 실린 신문을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보여줬답니다. 딸의 마음을 확인해서 기뻤습니다.”
-최근 진보진영의 모습은 어떻게 보십니까.
“진보진영이 분열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호응을 못 얻는 것 같아요. 제 분석으로는 절박함의 부족,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때문인 듯합니다. 보수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므로 이익이 되면 원수와도 동침하고, 다른 길을 가다가도 공동의 목표를 가지면 어깨동무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신념과 이론을 주장하며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해 있거든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진보진영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인터뷰는 진보신당의 심상정 경기지사 후보가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를 사퇴하기 전에 이뤄졌다.)
-이 인터뷰가 신문에 실리는 날 지방선거가 치러집니다.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을까요.
“저는 무조건 보육과 교육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겠다는 후보를 뽑을 겁니다. 이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니 지난해 결식아동 지원금이 줄어들었어요. 부자 주머니 채워주느라 애들 밥 굶기는 게 말이 됩니까. 부자 감세로 4조원 날리고 4대강 사업 홍보에만 몇백억원을 쓰면서요. 부모의 경쟁력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밥 잘 먹고 좋은 교육을 받아야 국가경쟁력이 올라갑니다. 어릴 때 밥 굶고 자란 애들이 무슨 애국심이 생기고 훌륭한 일을 하겠습니까. 제발 보육과 교육에 미친 후보를 뽑으세요! 6월2일 투표한 뒤 투표 확인증을 들고 우리 가게에 오시면 짬뽕을 무료로 드릴 겁니다.”
ㆍ현 정권 견제받자 수입 격감… 부득이 피켓 대신 창업 선택
ㆍ“훈수보다 경영실전 진땀 나”
오후 3시. 서울 신촌역 부근의 짬뽕집에서 한 중년 남성이 점심 끼니를 놓친 손님을 위해 짬뽕을 만들고 있다. 빨간색 티셔츠 차림에 짬뽕 그릇을 공손하게 손님 앞에 내려놓는 이는 윤종훈씨(49). 동글동글한 얼굴에 익숙한 손놀림이 짬뽕과 잘 어울리지만, 그는 정부와 재벌을 준열하게 비판하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이자 국내 유수 법무법인 소속 회계사였다. 1인시위를 창안해내 시위문화에 새로운 역사를 쓴 주인공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이 감세정책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탈당하기도 했던 그는 요즘은 정치보다 날씨에 관심이 많다. 날씨가 쌀쌀하거나 흐려야 짬뽕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흐렸던 지난달 25일, 상하이짬뽕집에서 회계장부와 피켓 대신 짬뽕 그릇을 든 그를 만났다.

-지난 3월 개업했는데 장사는 잘됩니까.
“먹는장사로 먹고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식당은 목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골목에 가게를 열어서인지 아직은 손님이 많지 않아요. 세트메뉴도 개발하고 인근 연세대·이화여대에 전단도 뿌리는 등 마케팅에도 신경을 씁니다. 하루 종일 손님이 언제 올까 기다리면서, 기다림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란 걸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3500원짜리 짬뽕 한 그릇 드시러 오는 분들이 정말 고맙고 반가워요.”
-왜 짬뽕집을 열었습니까.
“돈 때문이죠. 현 정부 들어 진보성향 인사나 시민단체에 대한 정권의 견제가 상상 이상으로 심합니다. 하물며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은 더 심하겠죠. 회계사는 기업들을 상대하는데 기업들이 일을 안 맡기니 버틸 재간이 없어요. 법무법인에서 받는 수입과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연구용역비로 생활해왔는데, 수입이 너무 줄어 생계를 꾸리기 힘들었습니다. 큰아들이 올겨울 제대해 대학에 복학할 예정이고, 둘째인 딸은 고2예요. 한창 돈이 들어갈 때죠. 애초엔 보쌈집을 열고 싶었는데 예금 깨고 은행 대출도 받았지만 창업자금이 부족해 조그만 짬뽕집을 열었어요. 생계유지가 안되면 제 신념이 바뀔 것 같아서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이자 수단으로 짬뽕집 주인이 된 겁니다.”
-작은 가게지만 최고경영자(CEO)가 되어보니 어떤가요.
“재벌을 비판하고 CEO의 자문 역할만 해주다가 직접 해보니 훈수 두는 것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실감합니다. 일단 제가 경험한 세계와 요식업계의 이론과 질서, 관행이 너무 달라요. 주방장이 홀연히 사라지질 않나, 날씨가 좀 더우면 매출이 뚝 끊기질 않나…. 앞으로 돈 많이 벌어 직원들 복지도 신경쓰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싶습니다.”
-회계사라는 따뜻한(?) 직업이 있는데도, 춥고 험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1980년 대학에 입학했어요. 엄혹한 시기에 대학을 다니다 회계사가 되었죠. 분식회계가 관행이던 시절이고, 다국적기업들의 기업사냥이 심할 때라 법대로, 양심적으로 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더군요. 94년에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어 소액주주운동을 시작한 것은 회계사로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왜 그렇게 눈 부릅뜨고 삽니까. 대학에서 제적된 후엔 정비공에 택시 운전기사를 했고, 얼마 전에는 영어학원도 운영했는데요.
“제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나 봅니다. 생긴 대로 살 뿐이죠. 가끔 ‘1인시위만 안 했어도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며 그럭저럭 먹고는 살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긴 합니다만….”
-1인시위도 벌써 10년 전 일이군요. 그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당시에 왜 재벌들에게 제대로 과세를 안하느냐고 부지런히 언론에 기고도 하고 정부에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도 놓았죠. 단식농성을 할까 어쩔까 고민하다 혼자라도 항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혼자 시위하면 집시법 위반인지 잘 몰라서 법조인들에게 문의해보니 1인은 ‘다수’가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얻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꽥!’ 소리라도 질러보자며 혼자 국세청 앞에서 시위를 했는데 그게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시위문화의 새로운 유형이 된 겁니다.”
-1인시위를 통해 ‘과격한 진보’로 규정된 면이 있습니다. 후회는 없나요.
“생계에 지장을 주니 때론 후회됩니다만, 1인시위는 제게 더 큰 선물을 줬습니다. 그 무렵 큰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9시뉴스에 톱기사로 나와서인지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런 훌륭한 분도 있다’며 제 이야기를 한 모양입니다. 물론 제 아들인 줄은 모르셨죠. 아들이 그 일을 계기로 저를 존경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사교육도 못 시켜 미안한데 아들은 고액과외로 명문대에 들어간 것보다 떳떳하다고 합니다. 새침한 딸도 짬뽕집 개업기사가 실린 신문을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보여줬답니다. 딸의 마음을 확인해서 기뻤습니다.”
-최근 진보진영의 모습은 어떻게 보십니까.
“진보진영이 분열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호응을 못 얻는 것 같아요. 제 분석으로는 절박함의 부족,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때문인 듯합니다. 보수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므로 이익이 되면 원수와도 동침하고, 다른 길을 가다가도 공동의 목표를 가지면 어깨동무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신념과 이론을 주장하며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해 있거든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진보진영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인터뷰는 진보신당의 심상정 경기지사 후보가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를 사퇴하기 전에 이뤄졌다.)
-이 인터뷰가 신문에 실리는 날 지방선거가 치러집니다.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을까요.
“저는 무조건 보육과 교육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겠다는 후보를 뽑을 겁니다. 이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니 지난해 결식아동 지원금이 줄어들었어요. 부자 주머니 채워주느라 애들 밥 굶기는 게 말이 됩니까. 부자 감세로 4조원 날리고 4대강 사업 홍보에만 몇백억원을 쓰면서요. 부모의 경쟁력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밥 잘 먹고 좋은 교육을 받아야 국가경쟁력이 올라갑니다. 어릴 때 밥 굶고 자란 애들이 무슨 애국심이 생기고 훌륭한 일을 하겠습니까. 제발 보육과 교육에 미친 후보를 뽑으세요! 6월2일 투표한 뒤 투표 확인증을 들고 우리 가게에 오시면 짬뽕을 무료로 드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