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겨울, 영종도 조영관
1998년 겨울, 영종도
조영관
모두 여기를
여름에는 사우디, 겨울에는 시베리아라고 했다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 보고 퇴근하는
겨울, 영종도 공사장
갯벌 막아 지른 황막한 벌판 눈길을
덜컹덜컹 트럭은 잘도 달려간다
방한모 뒤집어쓴 채 졸다 깨다
언뜻 어스름 눈
비벼대면
차창으로 게릴라처럼 뛰어드는 새벽 안개
바람이 불 때마다 눈더미가
갈대 자빠진 갯고랑에 수북이 떠밀려
쌓여가는,
눈바람 피할 곳도 막을 것도 없는
돌더미 눈길 위로
시린 발 동동 찍으며
우린 날쌘 노루처럼 작업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곤 바로 철근 뾰족뾰족 솟아오른
시멘트 담벽 아래
각목과 합판을 분질러 깡통에 불을 지핀다
귀싸대기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콧물 질질 흐르는 뺨을 문대며
불을 한 주먹씩 떠보지만
잡히는 것은
톱날처럼 파랗게 날 선 바람뿐,
옹송그리며 둘러앉아
곱은 손을 비벼가며 피워 무는 담뱃불 위로
갈매기 울음소리
끼룩끼룩
풀도 없는 돌무덤
들판 위로 유배되어
우리는
그리고 곧, 아직 촉촉한 갯벌을 후비며
덤프트럭이 달려오면
철갑 공룡들의 트림이,
새벽체조가 드디어 시작된다
집게발로 하늘 향해 별이라도 후벼팔 듯
얼쭝얼쭝 포효하던 포크레인이
갯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돌 자갈을 몸통으로 깔아뭉개며
냉기 절절 흐르는 새벽 공기를
마구 짓쪼아 나가고
우리도 언 손마디가 뚝뚝 소리나게
펄쩍펄쩍 후려 뛰면서 몸을 푸는데
안개만이 낯선 친구처럼
스멀스멀 회백색의 하늘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눈 위에 찔끔찔끔 찍히는 오줌발에
숭숭 구멍이 뚫려 비칠비칠 뒷걸음질치는
아, 포근한 잠이,
부리에 떨어지는 부신 햇살이 그리운 새들의,
물고기의 가슴에 돌을 퍼담는
겨울, 영종도
물새들은 참으로 멀리 쫓겨나고
겨울 안개는 정말 너무 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