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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비름처럼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 150여 명 참석한 가운데 故 이일재 선생 추도식 열려
참된
2012. 9. 4. 21:37
인터내셔날가
이곡을 듣습니다.(출처 피엘송닷컴 http://plsong.com/home.php)
“쇠비름처럼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
150여 명 참석한 가운데 故 이일재 선생 추도식 열려
대구=천용길 기자 참세상 2012.03.26 22:20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26일 늦은 7시 대구의료원 국화원 301호에서 24일 별세한 故 이일재 선생 추도회가 열렸다. 고인은 작고 일주일 전 “‘인터내셔널가’를 불러줄 수 있겠냐”고 동지이자 친구인 권오봉 선생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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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의 친구이자 동지인 권오봉 선생 |
조사를 한 권오봉 선생은 “이일재 동지의 호가 ‘고이’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쇠비름이란다. 소가 되새김질을 3번 해도 살아남는 쇠비름처럼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에 걸맞는 뜻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이어 “구름같이 모인 동지들이 (이일재)동지의 뜻을 따라 잘 싸워나가면 나도 따라 가겠다”고 밝혔다.
‘혁명전사 故 이일재 선생 전국노동자장 장례위원회(장례위원회)’ 주최로 열린 추도회에는 유가족을 포함해 15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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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장례위원장인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
공동장례위원장인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전노협 시절 고인을 처음 만났다고 밝히며 “나이가 들수록 교조주의자, 권위주의자가 되어가는데 이일재 동지는 반대였다”고 소회하며 “그의 뜻처럼 사는 것만이 선생을 살리는 일”이라며 추도의 뜻을 밝혔다.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정림 전 민주노총대구본부장은 “고맙습니다. 죽어주셔서. 선생님이 혁명을 다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불러모았다”며 눈문을 흘렸다. 그는 고인과의 기억을 회상하며 “민주노총 정규직 노동운동은 의미가 없다던 선생님의 말이 오늘날 나타났다. 물질적 부가 삶의 목표인 사회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추도식은 민중가수 임정득 씨의 ‘민들레처럼’, ‘소금꽃 나무’ 추모가로 이어졌다. ‘특별하지 않을 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 지라도...’라는 노랫말은 고인의 삶과 ‘쇠비름’이라는 호와 어우러져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
참석자들은 고인과 동년배부터 스무살 전후한 이들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고인이 살아 생전 듣고 싶어 한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하며 추도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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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도식 참석자들이 인터내셔널가를 합창하고 있다. |
2010년 인터뷰에서 고인은 ‘사회주의 운동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한다’는 질문에 “체제 굴레 속에 들어가지 말고 현장에서 구체적인 운동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상적으로나 실천적으로도 북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 해방직후와 지금의 북한 권력층도 변화가 있었다는 거야. 북에서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용감하지만, 남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야. 북한에 관계없이 통일 이후에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지 고민해야해. 남쪽이든 북쪽이든 서로의 체제를 양보하지 않거든. 민족문제라는 것은 계급적 내용이 있어야지 계급적 내용이 없으면 뭐가 있나. 또, 많은 분열이 있는데 그게 좋거든. 억지로 통합하려 하지 말고 진취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고인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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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빈소와 다르게 하얀 꽃이 아닌 붉은 계통의 꽃이 영정을 감싸고 있다. 고인은 살아 생전 흰색을 싫어했고, 붉은 색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에 유족들은 흰 꽃이 아닌 붉은 계통의 꽃을 빈소에 두었다. |
한편, 27일 오전 9시에 발인을 하고, 11시에는 대구 시민회관 근처에서 노제가 열린다. 고인의 장지는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에 마련할 예정이다. 공동장례위원장은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오세철 교수, 함철호 대구진보민중공투본 상임대표가 맡았으며 약 600여 명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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