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

[스크랩] 젊은 시인의 시적 발언 / 시는 내 것이 아니다 - 임성용

참된 2011. 2. 19. 20:51

시는 내 것이 아니다 - 임성용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시를 잘 모른다. 그래서 시적 발언이나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힐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시를 쓴다고해서, 시집을 냈다고 해서, 누군가 나를 시인이라고 부르는 호칭이 매우 거북스러웠다.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간혹 물었다. 당신에게 시는 무엇이냐고! 문학의 소양이 깊고 빼어나게 시를 잘 쓰는 이름난 시인들의 대답을 들어보면, 그들은 자꾸만 시를 땅에서 하늘 위로 올려놓는다. 마치 하늘에 뜬 구름처럼 아름답고 황홀한 시는 아무리 노력하고 꿈을 꾸어도 감히 가닿을 수 없는 멀고 아득한 세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시는 일상적인 일기와 다를 바 없었다.

 

  시와 일기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나는 이곳저곳 공장을 떠돌았다. 특별히 가진 기술도 없었고 대공장에 다닌 것도 아니었다. 한곳에서 꾸준하게 오래 있지도 못했다. 철공장에서 주로 일을 했는데, 일당쟁이 용역에도 나가고 건축현장 인부로도 떠돌았다. 거의 십여년 간 밑도 끝도 없는 생활이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밤잠 못 자고 이렇게 살고 있는가? 늘 그것이 고민이었다.

  야간 일을 마치고 아침에 돌아오면, 자취방에는 어지러운 술병들이 나뒹굴었고 짐짝처럼 포개어진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해고자들이었고 모임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동료들이었고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현장에 대한 신념이나 의지가 그다지 없었다. 다만 먹고 살기 위해서 아무 공장에나 다닌 둥 마는 둥 했다. 내가 가진 유일한 관심이라면 틈틈이 책을 읽거나 간혹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선반 회전축처럼 돌아가는 생활이 너무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공장에서 일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잔업하고 야간하고.... 그렇게 정신 없는 세월이 청춘과 함께 가버리면 영영 내 인생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나는 어느 땐가부터 스스로의 불안함을 달래려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따박따박 써나가는 일상의 기록이 아닌, 잡문이나 시편들을 일기로 채웠다. 그것은 내 삶을 내가 바라보는 노트에 불과했지만, 주러리주저리 풀어놓는 바로 넋두리와 낙서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차츰, 그날그날 겪었던 일과 이야기들을 한 편의 시로 적어나갔다. 시라고 이름 붙이기도 뭣하지만, 어쨌거나 시 같지도 않은 글모음집이 서너 권 생겨났다. 결국 시란 나에게는 지극히 자위적인 수단이었으며 한낱 보잘 것 엇는 기록이었던 셈이다.

 

  노동자와 벗들

  나는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십년이 넘게 창작 공부와 문예활동을 했다. 아마 그 십년이 나에게 글을 쓰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본다. 문학회와 여러 벗들이 없었다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문학회는 당시만 해도 문예창작이 주된 목표는 아니었다. 문학에 관심을 가진 노동자들이 모여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은 싸움 현장에도 쫓아다니고 그랬다. 전문적으로 글을 쓴다거나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은 노동자문학회를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문학회로 말미암아 나는 노동자로서 나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문학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노동자 모두의 것으로 단련되고 길러졌다.

  노동자문학회는 몇 년 전에 간판을 내렸다. 나는 그 벗들을 잊지 못한다. 그 수많은 날들을 오고 간 공단노동자들의 발길을, 숨소리를, 즐거운 노랫소리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등단을 하고 당선이 되고 시집을 낼 수 있을까, 기웃거리지 않았다. 그들은 일하고 돌아와 동료들과 마주앉아 시집을 읽으며, 다른 시인들의 정신과 세계를 배우고자 했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토론했다.

  하나 둘씩 현장노동자들의 발길을 끊어지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나는, 노동하는 벗들의 행적이 남기고 간 그 끊어진 길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다.

 

  기계의 눈으로
  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시를 고민하고 시를 떠들고 할 자신도 없거니와 지금도 하루 열두시간 이상 밤일을 한다. 때문에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 물리적인 조건이 시를 쓴다는 것을 참으로 '배부른 짓'으로 만들어버린다.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빛나는 시를 다듬어서 무엇하랴. 내가 아니어도 세상에 시 쓰는 사람은 많고 대학에서도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은 생각보다 무척 영리해서 과연 이 자가 시를 제대로 배우고 읽힌 놈인지를 금방 알아낸다. 더군다나 하늘의 별보다 시인이 더 많은 우리나라에서 시는 그렇게 큰 효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는 내 것이 아니어도 좋다. 굳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있다. 시는 헐거워진 내 눈의 나사를 단단하게 죄는 역할을 한다. 세상에 넘쳐나는 식물성의 정서를 동물적이고 기계적으로 바꾼다. 용서가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럴 때, 시에서는 유압유가 흐르듯 눈물이 나고 피가 새어 나오기도 한다.

 

 

 

 

임성용 전남 보성 출생. 2002년 전태일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하늘공장'이 있음.

출처 : 시평
글쓴이 : 종달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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