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숙제 같은 기사입니다. 엊그제 동인지가 나왔는데 김해화 시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시집을(동인지) 냈다고 누가 안 척이나 하든가, <오마이뉴스>니까 자네가 그래도 알려나주소..." 그래서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필자주>
노동자 그리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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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시 동인지 7집 '아직은 저항의 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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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조호진 |
참 오래간만에 만나던 날 비가 왔습니다. 오는 길은 여러 갈래였습니다. 서울, 부산, 순천, 마산, 창원, 부천... 오는 길이 각기 틀려서 마산역 포장마차에서 기다리며 소주를 마셨습니다. 소주를 마시는 동안 별달리 할 일 없어 무엇하고 살았냐고 물었더니 힘들게 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십 년 전에 만나면서 나누었던 물음과 답변이 그대로였습니다.
십 년 전인 93년 노동자 문학동인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일과시>라고 했습니다. 달리 해석할 것도 없이 일하고 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시 쓰자고 산 인생이 아니므로 당연히 일하면서 시 쓰자고 했습니다. 그때 노동자 문학인들은 부끄러웠고 가슴 아팠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무엇인 것 같이 취급받다 내동댕이쳐졌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상품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부터 노동자에게 문학이 있었다고 소리쳤고, 문학은 계급성에서 나온다고, 혁명 문학의 전위는 노동문학이라고 하도 소란을 피우면서 느닷없이 떠받들 길래 노동자들의 문학 같지 않은 문학이 우대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울산에서 서울까지 노동자의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복받쳤던 설움이 터져 나오면서 노동자의 인간선언을 외쳤는데 그 불길을 주체할 수 없어서 우리들의 성화는 촌놈이 길길이 뛰듯이 펄펄 살았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지식인들은 감동했고 혁명을 여기다 접붙이려고 했습니다.
소위 학생운동권은 혁명의 전위는 역시 노동계급이라고 부추기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노동현장에 가야 진정한 운동가의 길이라며 뛰어들었습니다. 그네들 참 열심이었습니다. 오래 가지 않았지만 그네들 인생에서 진정한 자기 성찰의 기회였을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한때의 소란이었습니다.
제대로 잔치도 해보지 않고 잔치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다들 자기 갈 길로 갔습니다. 그렇다고 원성할 것은 아닌데 너무 소란을 피우고 떠났던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싱겁게 끝날 수도 있었던 것을, 제대로 사랑을 나누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마치 섬 처녀가 사랑했던 사람 뭍으로 떠나 보낸 것처럼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십 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습니다. 문동만, 조태진, 오도엽, 송경동, 손상열, 서정홍, 김해화, 김해자, 김용만, 이한주, 문영규... 김기홍 시인은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못 온다고 했습니다. 동만씨는 노조 집행부라고 했고, 경동씨는 돈 안 되는 노동자 잡지에 썩는다고 했고, 영규씨는 철공소에서 선반공으로 일한다고 했고, 용만씨는 철야에 찌드는 공장장이라고 했고...
참 못나게 살아온 얼굴들인데 참 반가웠습니다. 꾀부리지 않고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시인 행세하기 보다 살아 버티기 위해 살았고 싸울 것과 싸우면서 살아온 얼굴들로 인해 삶은 시보다 감동적이어서 우리끼리 우리 삶을 어루만졌습니다. 참 변하지 못한 얼굴들이 서럽고 반가워서 소주잔을 맘껏 나누었는데 왜 이리 쉽게 취하는지 몰랐습니다.
서러웠던 것은 정을 나눌 틈도 없이 헤어졌던 것입니다. 철도노동자 이한주, 김명환 시인은 두 어 시간 보낸 뒤에 새벽 열차로 떠나야 했고 철근노동자 김해화 시인은 새벽 몰래 차에 실려 떠났습니다.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하루 품삯과 공장살이 어쩔 수 없어 그새 일하러 가야했던 것입니다. 소주 몇 잔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다가 피곤에 지친 동인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끼리 소주를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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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의 손이 아름답지 않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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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순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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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아름답다고 시인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참 저렇게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시를 써서 각광을 받을 수 있구나. 감탄하다가 그렇지 못하면서 비판했는데 다만 거짓되지 않은 삶을 바탕으로 시를 쓰며 산다고 했는데 시가 구차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음은 <일과시> 동인 제7집 '아직은 저항의 나이'에 대해 발문입니다.
발문 - 세상에 대한 순정성의 시
박두규(시인)
빛나고 반듯한 것들은 모두 팔려가고 상처 난 것들만 남아 뒹구는 파장 난 시장 귀퉁이 과일 좌판 못다 판 것들 한 움큼 쌓아놓고 짓물러진 과일처럼 웅크린 노점상 잔업에 지쳐 늦은 밤차 타고 귀가하다 추위에 지친 늙은 노점상을 만났네 상한 것들이 상한 것들을 만나면 정겹기도 하고 속이 상하는 것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떨이로 몽땅 가져가시오!" 떨이로 한 움큼 싸준 과일들 남 같지 않은 것들 품에 안고 돌아와 짓물러져 상한 몸 도려내니 과즙 흘리며 흩뿌리는 진한 향기 꼭 내 몸 같아서 식구들 몸 같아서 한 입 배어 물다 울컥거렸네 한 입 배어 물다 울컥거렸네 -조태진 '상처난 것들의 향기' 전문
<일과시>에 대하여 무엇인가 말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워 시를 한 편 앞세웠다. 그리고 그 부담스러운 것은 <일과시> 동인들은 늘 말보다는 몸으로 먼저 스스로를 보여주는 시인들이고 그들의 삶이 대체로 무엇을 숨기고 자시고 할 필요조차 없는, 있는 그대로 살아내기도 버거운 현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김해화 시인하고 술을 마시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가? '시 쓰는 일도 이젠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의 삶이 문학으로 포장되었을 때 그 문학 속의 삶이 현실적 자아가 보았을 때는 참으로 사치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글 속의 현실은 감동과 함께 아름다움으로 오지만 실제 삶의 현실은 고통과 핍박으로 오기 때문이다.
다른 <일과시> 동인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시를 읽다 보면 시적 감동 그 이면에 울상을 하고 앉아 있는 그들의 핍진한 하루가 먼저 보인다. 내가 부담스러워했던 것은 이러한 부분의 그 어떤 것일 터이다. 나의 이러한 소박한 부담도 과거 80, 90년대 변혁운동 속에서는 하나의 담론으로 거론되어지던 것들이지만 지금은 구체적인 생활세계가 모두 자본의 관성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이젠 거추장스러운 이야기가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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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시> 동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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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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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과시>의 문학적 가치의 소중함은 타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어느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큰 물살에 휘둘려 흐르는 비명 소리가 물소리에 묻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 당하는 그 어느 지점에 <일과시>의 시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문학 동인으로서 그 분명한 성격과 지향을 가지고 일정한 문학적 성과를 내고 있는 동인지는 <일과시>가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 얼마 전 전주에서 있었던 '전국 민족문학인 대회'의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그때 행사 중 하나로 '작가회의 정체성 모색을 위한 합동 토론회'가 있었는데 발제자로 나선 박태순 선생은 어떤 대상에 대한 정체 규정을 위해서는 그것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항성(恒性)과 변성(變性)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잠깐 전제하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때의 그 항성과 변성 이야기가 얼핏 생각하면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흐르는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것들의 본질적 속성이 훼손되지 않고 변화 발전, 계승되는 것은 한 시기마다 항성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항성(恒性)은 그 본질적 속성을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와 같은 것이며 호(好), 불호(不好)를 떠나 적자적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변성(變性)은 세월에 노출되어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상적 흐름이며 또한 역동적인 생명력이고, 끝없이 새로운 길 찾기를 모색하는 성질이다.
이 항성과 변성은 비단 작가회의 정체성을 말할 때만이 아니라 역사라는 큰 줄기의 흐름 속에서도, 당대의 문학 속에서도, 혹은 개인의 한정된 삶 속에서도 엄정하게 구분지어 생각해야 할 본질적 질문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젊은이들은 자기시대의 시민적 삶이 가지는 보편적 과제에 무관심한 편이다. 생활 속에서 개인과 사회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철저하게 비정치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개체화 된 자아들이 자본으로 일원화된 현상세계의 물살에 아무런 대비도 없이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현상은 문단의 젊은 시인들에게도 무관한 것은 아니다. 요즘 문단의 젊은 시들을 보면 자아의 영역에 갇힌 미시적 세계 속에서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역사의 변성적(變性的) 흐름에 역기능적으로 반응한 실패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러한 것은 우리 시사(詩史)에서 80, 90년대 변혁운동기의 항성적 요소에 대한 철저한 고민도 없이 손쉽게 현상적 흐름을 타고 있는 변성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일과시>를 보면 현재의 문학 속에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80, 90년대의 항성적 영역을 그래도 순기능 적으로 반응하며 잘 지켜내고 있는 보기 드문 동인지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변화를 꿈꾸는 시절에 <일과시>가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순정성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사실 역사의 격동기에서는 한 획을 긋는 결정적인 대중적 정서일 테지만 요즘의 일상 속에서는 지켜내기에 급급한 현실이 되었다.
... / 정말 오래간만에 집회에 갔다 / 마산역 광장엔 / 바뀌지 않는 구호가 울렸고 / 바뀌지 않는 분노가 터졌고 / 바뀌지 않는 세상을 느꼈다 / 바뀌지 않는 삶을 사는 / 옛친구를 만나 집회가 끝난 뒤 / 합성동 뒷골목에서 닭도리탕에 소주를 나눴다. / ... / 친구는 나를 노래방으로 끌었다 / 한 시간에 이만 원 미시를 부르고 / .... 젖가슴 만지고 치마를 들춘다 / 바뀐 것은 세상도 삶도 아니다 /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 우리가 마시는 술이 / ...(오도엽 '노래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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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장... 그리고 노동자의 일은 계속 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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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조호진 |
그렇다. 바뀐 것은 세상도 삶도 아니고 우리가 부르는 노래, 우리가 마시는 술과, 우리의 흐트러진 구체적 일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화려한 포장지 속에는 아직도 바뀌지 않은 구호와 바뀌지 않는 분노가 그대로 있다. 바뀌지 않은 예전의 삶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세상에 대한 순정성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너가 상처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가리봉으로 와 // 아무도 없는 술집에서 뼈해장국 시키면 / 거기 너의 설움이 울대 채 넘어온 듯 / 퉁명스러운 감자 몇 알이 묻어 나올 거야 // 때타고 흙먼지 묻었지만 / 씻겨 놓고 보면 말갛던 / 너의 옛 친구들이 퍽퍽하니 목에 메일지도 몰라 // 어우러져 한 솥 펄펄 끓었어도 / 제각기 자란 토양 달라 / 한 맛내기 쉽잖던 시절 / 왜 우린 서로 뼈처럼 단단해지기만을 바랬을까 // 다글다글 끓는 지난 날 떠올리자면 / 거기 내 그리움도 얼큰히 풀려 / 고춧가루, 서너 숟갈 더 퍼부어도 시원찮은데 // 지금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 맵고 찬 기억들 울울이 가슴에 안고 / 열 갈래 스무 갈래 / 떠나간 친구들(송경동 '그리움' 전문)
... / 바람 불 때마다 흔들려 / 스스로 내 목숨 굵히고 다쳐 피 흘리면서 / 마지막으로 가슴 속에 /유자같은 그리움 한 알(김해화 '유자같은 그리움 한 알' 부분)
위의 시들이 아니래도 '그리움'의 감정은 세상에 대한 순정성과 지나간 세월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복합적인 감정일 것이다. 그리움은 어느 누구에게도 근원적인 것이며 또한 변화하는 현재적 삶을 견제하는 항성적 영역의 본질적 자아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리움은 <일과시>가 꾸준히 지켜온 '세상에 대한 순정성'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다른 모습이다.
그것들이 위의 시처럼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 관통해 왔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그리움은 현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며 개인에게는 삶의 본질적 영역일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리움처럼 <일과시> 동인들의 '세상에 대한 순정성'은 개인의 시적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들은 결국 세상에 대한 긍정이고 희망이며 어렵고 힘든 현실의 세상을 그래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눈물겨운 낙관이다. 이 눈물겨운 낙관이 '세상에 대한 순정성'이다.
어린 나무들은 긴 겨울을 잘 이겨냈을까 // 지하 셋방 / 바퀴벌레처럼 기어들어 온 / 햇볕 한 줌 / 방안 가득 풀어놓은 어둠을 / 조금씩 갉아먹는다 // 만성이 된 천식을 괴롭히는 먼지처럼 / 보잘 것 없이 살찌운 고통이 / 몸살을 앓는 동안 // 창가에는 어김없이 / 어린 풀 한 포기 자란다(손상열 '봄' 전문)
... / 눈이 내린다 / 세종로 미대사관과 일본대사관을 / 멀리 돌아 / 종로거리 스산한 발걸음을 피해 / 이문동 지하 셋방에 숨어든다(손상열 '저녁눈' 부분)
지하 셋방에 기어들어 온 햇살 한 줌에 대한 긍정 하나가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하중을 버티는 낙관일 것이다. 이문동 셋방에 내리는 눈발을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이 세상에 대한 순정성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김용만의 시에서는 세상에 대한 당당함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김기홍의 시에서는 개인의 내면을 가득 채운 절박성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 / 초등학교 사학년 아들놈 / 반장선거에 나갈 거란다 / ... / 누구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 밀어 줄 친구 있느냐 / 아내 물으니 / 아들놈 하는 말 / 미리 짜고 하면 비겁하잖아 / 그렇다 / 밥숟가락 들다 말고 / 할 말을 잊었다 // 그날 밤 / 나는 오래 오래 / 베란다에 서 있었다 // 저런 당당함(김용만 '내 아들' 부분)
이 몸을 눕히지 않고는 / 빠져나가지 못하리 / 이 맘을 죽이지 않고는 / 떠나지 못하리(김기홍 '사람의 바다' 부분)
미리 짜고 하면 비겁하다는 아들의 말에 베란다에서 오래 서서 세상에 대한 당당함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몸을 버리는 살신의 마음이 아니면 이 세상을 한치도 헤쳐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절박함은 사실 모두 '세상에 대한 순정성'의 의미에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과시>는 앞서 말한 것처럼 80, 90년대 변혁운동의 항성적 영역을 그래도 잘 지켜내고 있는 보기 드문 동인지이다. 그리고 당시 변혁운동의 바탕을 이루었던 '세상에 대한 순정성'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깊게 깔려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삶의 양상과 방향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는데도 <일과시>는 현상적 흐름을 외면한 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근본적인 항성적 화두를 가지고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과시>의 아름다움이고 훌륭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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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의 햇새벽은 전혀 오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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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조호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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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세상을 알게 된 만큼, 느낀 만큼, 그리고 자아를 실현해 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히고 상한만큼, 그만큼 쓰여진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개인이 가지는 어떤 이념과 사상보다는 개인이 품어내는 사람의 냄새가 문학 속에서 더 큰 감동으로 온다고 믿고 있다.
나는 <일과시>의 시들을 읽으며 이런 것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쉽게 경직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시를 쓰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고, 본질적 물음에 충실한 시들을 생산해내면서도 시적 완성도가 높은 <일과시> 동인들이 미덥게 느껴졌다. 이러한 말을 충분히 뒷받침해 줄만한 시 두 편을 감상하면서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밤새 방전된 핸드폰 속에 /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울음소리가 들어 있다 / 수신지를 잘못 찾은 울음 사이 토막난 채 / 찍힌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 / 암호 같다. 접선을 잘못한 / SOS 타전 같다. 사랑에도 가는 길을 / 잃어버린 자가 일부러 잘못 누른 / 아니, 나에게 내민 간절한 손인지도 모른다 / 밤새 떨어진 포탄과 화렴 속에서 흘린 / 머나먼 아라비아 남자의 울음소리인지도 모른다 / 누군가 잘못 누른 번호는 말하는 것 같다. / 모든 사랑은 이렇게 어긋난 부호라고 / 잘못 배달된 메시지는 말하는 것 같다 / 오류를 저지르지 않은 네 사랑이 오류라고(김해자 '내 사랑은 오류' 전문)
밤새 방전된 핸드폰에 찍힌 말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 사랑은 이미 오류를 저지른 타자의 간절한 사랑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절함은 어긋난 부호처럼 오류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깔려 있다. 이렇듯 사랑이나 사람이나 그 간절함은 어떤 오류도 정당하다. '인간에 대한 믿음'의 의미 영역을 한껏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과거 80, 90년대 변혁운동 속의 그 간절했던 마음들도 참으로 많은 현상적 오류를 범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오직 간절한 사랑 하나로 시대를 건넜으며 그 간절한 사랑의 오류를 통해 더욱 견결한 마음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일과시>가 견지하고 있는 항성적 영역이 아니고 무엇이랴.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과 현 세상에 대한 <일과시>의 결연한 발언처럼 느껴지면서도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 시 한 편을 소개하며 부족한 글을 마칠까 한다.
너는 생활의 하수를 미나리꽝으로 받으며
푸른 잎들 밀어 올리는데
회류하지 못하는 황사를 어느새 풀어서
아침이면 가라앉혀 놓고
먼산을 당겨서 가까이 안는데
내 마음은 마르고 습한 노래들 그치지 않는다.
미안하다 봄 (문동만 '미안하다 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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