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

[작가, 작가를 만나다]손석춘과 새책 ‘밥과 장미’ 펴낸 오도엽

참된 2010. 7. 8. 11:18

                  

                    오도엽(왼쪽)·손석춘

 

 

 

 

[작가, 작가를 만나다]손석춘과 새책 ‘밥과 장미’ 펴낸 오도엽 

 글 손석춘(소설가)·사진 강윤중 기자   경향신문   2010-05-09 16:47:51

 

 

 

ㆍ노동현장 진실 찾아 두 발로 쓴 ‘삐라’

시인, 기자, 작가. 그를 부르는 이름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호명들이 마뜩잖다. 전태일 어머니가 불러준 ‘건달’이 마음에 꼭 든다. 신간 <밥과 장미>(삶이보이는창) 표지 안쪽에 소개된 저자 오도엽이 걸어온 길은 ‘화려’하다. 고교시절엔 책가방 대신 내내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다니던 ‘날라리’였다.

‘건달’을 찾아 서울 동대문으로 갔다. 전태일재단이 둥지를 튼 그곳은 지금도 봉제공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재단 기획실장이 그가 맡고 있는 직함이다. 전태일의 흑백사진이 내려 보고 있는 사무실에서 인사를 나눴다. 눈빛이 참 맑고 짙다. 안경 너머 크고 검은 눈 어딘가에 사진기를 눌러대던 10대의 망막이 숨어있을 터다.
 
“어느 날 마주친 한 권의 책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날라리를 단숨에 바꿔놓았어요. 전태일을 읽으며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검은 눈에 물기가 스쳐간다. 그의 삶은 전태일과의 만남 이전과 이후로 갈라졌다. 군부독재 정권과 맞섰고 곧 수배 당했다. 용접노동자로 살아가던 1994년 결국 체포되어 대공 분실로 넘겨졌다. 대전교도소는 그의 삶에 다시 전환점이 되었다. 감옥에서 만난 비전향장기수들의 격려로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장기수들 도움으로 감옥 담장을 몰래 넘어간 시가 97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시인 오도엽에게 자신의 대표작을 물었을 때, 그는 무람없이 바로 그때 당선된 시 ‘굵어야 할 것이 있다’를 꼽았다. 시집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를 냈을 때도 그 시를 ‘닫는시’로 선택했다. “굵어야 할 것이 있다/돈 욕심만 가득한 마음보 말고/ 짓밟으려는 권력욕심 말고/굵어야 할 것이 있다.” 시인에게 그것은 “아침마다 힘쓰는 똥발”이고 “힘줄 툭툭 솟은 팔뚝”이고 “백성 사랑의 마음”이다.
 
오도엽은 지금도 먹먹할 때 그 시를 꺼내 읽는다고 수줍게 덧붙인다. 바로 그 순정함과 굵은 사랑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르포가 <밥과 장미>로 묶였다. 노동 현장을 찾아가 가슴으로 취재한 노동자들의 슬픔과 희망을 담았다. 책을 읽다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살풍경에 독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땅의 신문과 방송이 은폐해왔기에 낯설 따름이다. 기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 아닌가. 하지만 저들의 신문과 방송에서 비정규직은 보이지 않는다. 기자들 자신이 정규직이기에 비정규직의 애환을 실감하기 어렵다.
 
그래서다. <밥과 장미>는 “어쭙잖은 저널리즘”을 통렬히 질타하며 시작한다. “철저히 권리를 침탈당한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격문”이라고 선언한다. 자신의 글은 “편파적”이고 차라리 “삐라”임을 당당하게 밝힌다. 그가 글을 기고하던 한 인터넷 신문의 편집진이 그의 글에 사쪽의 의견도 담는 ‘보완’을 요청했을 때 거부했다. 자본의 주장은 자기가 아니어도 넘쳐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의 논리를 글로 옮기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그는 또렷하게 선을 그었다. 실제 책을 읽으면, ‘편파성’은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차별 받고 학대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실이 콧잔등에 시큰하게 다가올 뿐이다.
 
가령 젊은 정규직 남성이 중년의 여성에게 “작업 시간에 화장실 좀 가지마. 일할 때 물을 작작 좀 마셔!” 따위의 훈계를 늘어놓는 게 ‘선진 한국’의 노동현실이다. 그 새파란 ‘관리자’에게 화장실 가는 허락을 구하고 시간을 적어 확인증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가. 참고 싶지 않을까. 실제로 허락받는 일이 수치스러워, 참다 참다 그만 옷을 적시는 노동자도 있다. 소변 참는 게 일상이다 보니, 방광염에 곰비임비 걸린다.
 
유명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화사한 웃음 뒤에 깔려있는 고통과 서러움은 중산층의 삶에 젖어있는 우리의 시력이 얼마나 ‘퇴화’했는가를 웅변해준다.
 
오도엽은 이 책이 자신에게 밥이 되고 노동자들에게 장미가 되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밥이 된다는 뜻은 다른 게 아니다. 억울함을 못 견뎌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소연하는 노동자들을 찾아갈 차비조차 없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수천만원 연봉에 출장비 받아 취재하는 부자 신문 기자들의 노동쟁의 보도가 비틀린 반면에, 교통비조차 궁한 그가 발로 뛰며 쓴 ‘삐라’에는 진실이 담겨있다.
 
기자들이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해고당한 노동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때, ‘건달’은 그 노동자들을 애면글면 찾아간다. 쌍용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줄줄이 입사를 거부하는 대한민국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글을 읽으면 자연스레 묻게 된다. 누가 건달이고 누가 기자인가.
 
오도엽은 앞으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뜻있는 사람들이 농촌이나 산에 들어가 일구는 공동체를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공단에서 구현하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그 길은 전태일이 구상했던 ‘모범공장’과 맞닿아있다. <밥과 장미>는 자신이 걸어갈 그 길의 ‘서곡’이라고 결기 세우는 오도엽의 짙은 눈이 벌써 그립다.
 
 
■ 오도엽 광주에서 태어나 학생운동에 이어 15년을 공단에서 일했다. 시가 1997년 전태일문학상에 당선되었다. 전태일재단에서 일한다.
■ 손석춘충주에서 태어나 학생운동과 언론운동을 했다. 2001년 장편소설 <아름다운집>을 발표했다. ‘새사연’ 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