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며

<89호/주장> 민주노동당 창당, 구호에서 실천으로(2000.1.27)

참된 2010. 2. 2. 11:10

<89호/주장> 민주노동당 창당, 구호에서 실천으로

편집국 kctuedit@kctu.org / 2000년01월27일 18시10분    참세상

 

 

 

주장

민주노동당 창당, 구호에서 실천으로

 
민주노동당이 1월29일 창당된다.

진보정당운동의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창당의 역사적 의의와 감격보다 우려와 걱정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과거의 진보정당운동,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험'이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 어려운 탓이다. 나아가 지금도 진보정치·노동자 정치세력화가 굳은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도 과거의 진보정당들처럼 진보정치를 내걸었다 스러져간 존재로 역사책 한 귀퉁이에 실릴 것인가.

그 대답은 분명하다. 이제 십수년의 실험을 끝내야 한다.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과거에 비해 진보정당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첫째,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다. 정치문화를 바꾸자는 사회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나아가 사회전반을 짓누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민중생존권의 위기가 '민주화'라는 협소한 구호를 넘어 부익부빈익빈의 사회구조를 깨뜨리고 함께 사는 진보정치를 열망케 하고 있다. 둘째, 창당주체의 변화다. 가장 큰 변화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진영이 조직적인 힘과 결의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거 진보정당운동이 가졌던 대중적 기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 굳게 서려면 당의 성격과 진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분명한 계급정당으로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투쟁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활동범위를 의회진출로 한정하거나 이에 기울어서는 안된다. 민중생존권 투쟁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제도권을 넘어 어떻게 벌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노동자 중심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민중운동 전체를 포용하는 열린 정당'이 되어야 한다. 부문조직의 역사성과 경험은 물론 운동노선과 이념의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를 간과하거나 배제해서는 안된다. 당의 진로가 편중됨은 물론 당의 기반이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게 눈앞의 성과에 목매지 않고 '장기적 전망을 준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을 지키며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여유와 의지가 중요하다. 많은 시련과 절망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작은 돌부리에 걸려 주저앉는 일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민주노총은 지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을 민주노동당 창당의 주체로 세워 노동자 중심성과 투쟁성을 담보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총선에 적극 참여해 민주노총의 요구를 쟁점화하고 투쟁을 조직해 총파업투쟁의 교두보로 삼는 한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기반을 다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주요 전략지구에 조합원을 후보를 내고 당원배가운동을 펼치면서 5억원의 기금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60만 조합원 중 5천명만이 당원으로 가입한 것을 놓고 볼 때 민주노총이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2년여에 걸쳐 이어져온 숱한 결의가 새롭게 실천돼야 할 때다. 민중을 위한 진보정치가 또 한 번 실패한다면 그 악영향은 이전보다 훨씬 클 것이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민주노조운동 10여년의 절박한 과제도 상당한 후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그 책임의 상당부분을 민주노총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서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