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

'구로노동자문학회' 문패 내리던 날(2006.2.27)

참된 2009. 9. 6. 17:56

'구로노동자문학회' 문패 내리던 날

노동자의 삶글 쓰기 어디서 출구 찾나...

 

한겨레  조기원  기자   2006-02-27

 

 

 

» 18년 세월을 뒤로 하고 문을 닫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 구로노동자문학회 사무실. 지난 25일 회원들이 책과 세간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25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구로노동자문학회’ 사무실. 갈 곳을 잃은 책들엔 먼지가 이미 수북했다. 짐을 나르는 손놀림은 부산했지만 힘이 없었다. 구로노동자문학회가 사무실을 비우고, 오프라인에서 문패를 내리는 날이었다.

 

발디딜 틈 없던 문학강좌
18년만에 인기 ‘시들’
회원 5명으론 임대료도 벅차
이제부터 온라인 활동만

 

생긴 지 18년이 된 구로노동자문학회는 최근 활동이 벽에 부딪혔다. 몇 년 동안 신입 회원이 들어오질 않아 현재 회원이 5명만 남아 있다. 이들이 매달 내는 1인당 회비 2만5천원으로는 사무실 임대료 50만원을 채우기에도 벅찼다. 10명 남짓 참여하던 문학강좌도 올 봄부터 중단된다. 회원들은 3월부터 오프라인 활동은 일단 중단하고 온라인을 통해 느슨한 연대 활동을 벌여나갈 작정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께부터 비대위를 꾸려 해산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구로문학회 초창기 회원이었던 손상열(43)씨는 “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힘이 달렸다”고 말했다. “‘노동자’라는 말이 더이상 힘을 얻지 못했고, 노동문학계 전체가 침체됐지요. 요 몇 년 동안은 구로문학회를 이끌던 시·소설 소모임도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다른 노동자문학회도 9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지금은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곳이 서너곳에 불과하다.

 

» 1993년 구로노동자문학회 문학 강좌 뒤, 소설가 김남일씨와 회원들이 뒤풀이하는 모습

구로노동자문학회는 1988년 6월25일 〈실천문학사〉의 재정지원과 전태일기념사업회 등의 도움으로 태어났다. 문학이 전문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담아내는 것이란 생각으로 출발한 최초의 노동자문학회였다.

 

노동자문학회는 구로를 시작으로 영등포, 인천, 부천, 마산·창원, 울산 등지에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줄지어 생겨났다. 한때는 전국에서 10여개가 넘는 단체가 활동했다. 안기현 전국노동자문학연대 대표는 “1980년대는 노동자들의 자의식이 높아졌던 때였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소재로 글쓰기를 시도한 때였죠”라고 회고했다. “노동자들이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풀 곳이 마땅치 않았던 때였어요. 문학강좌를 한번 열면 발 디딜 틈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거쳐간 회원만 400여명, 출간한 단행본이 40여권 가까이 된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냈던 계간지 〈삶글〉은 노동자 참여 문학의 큰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 공단이었던 구로는 지금 더 이상 공장지대가 아니다. 〈서울통계연보〉를 살펴보면 94년 2392개였던 구로구 등록 제조업체가 2005년 조사에서는 1178개로 줄었다. 그 자리는 옷가지 할인 매장들이 채워나가고 있다. 안기현 대표는 “자본주의는 점점 세련되게 변신하는데, 노동자문화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노동자문학회의 마지막을 아쉬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