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농활의 마지막 날 뼛섬마처태우랴, 이가슴을 태우라 2004년 농민문학의 밤 농민문예인들의 행사가 토요일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행사를 다녀오고 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글을 올리려 했으나 디카가 없는 관계로 전농에 사진이 뜨기를 좀 기다린다고 글을 올리는게 늦지만 뭐, 아직 생생히 기억이 남아 있는 관계로....
2004 농민문학의 밤.... 사실 창작농활의 마직막 총화의 날이었으나 여느 농활대의 마을잔치보다 인원이 적은 아쉬움이 많은 행사였습니다. 세계화의 자본의 포화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농촌에서 농민들의 삶을 체득함과 동시에 사회적약자인 농민들을 자신이 가진 붓의 힘으로 땀흘리는 농민과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힘든 과정속에 만든 자리였슴이 뻔히 눈에 보이는 행사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적었던 아쉬움이 큰 자리였습니다.
행사의 시작은 영천지역의 풍물패가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사실 항상 대구, 경북지역의 풍물패의 공연만 보아온지라 타지역에서 창작농활을 온 풍물패가 공연을 하겠거니 생각을 하고 갔으나 아쉽게도 다시 항상 보아오던 지역의 풍물패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축날의 행사를 축하하는 인사말들이 전해졌는데 이날 행사를 축하하는 사람들의 축하메시지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90년 전국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생적 운동단체인 전농이 탄생하면서 농민운동은 현재 많은 발전을 가져왔지만 반대로 1920년대부터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들속에서 시작한 농민문학은 현재 전체 인구의 25%도 차지못하는 농민들과 지금도 탈농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처지와 마찬가지로 1990년 이후 거의 명맥이 끊어져 버렸다"는 문인들의 이야기가 우선 이날 행사가 마련된 취지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추측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시낭송이라고는 8.15통일행사에서 진관스님의 뜨거운 통일에 대한 열의를 마음을 담은 낭송외에는 기억에 남는 낭송이 없었는데 여는 시를 낭송하시던 분의 목소리가 너무나 낭랑하면서도 농민의 恨 맺힌 목소리가 너무나 가슴에 남는 행사였습니다. 보통 시낭송으로 행사를 시작하면 행사의 분위기가 차분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시낭송으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행사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우여, 아우여" 라는 문구로 선동되어지던 내마음...... 뭐,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비슷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문예공연으로 대구지역노래패 "좋은 친구들" 의 공연이 이어집니다. 그때 마침 청송군농민회 선전부장님이 도착해서 첫곡만 듣고 자리를 잠시 떳는데 그 첫곡이 "농 민 가" 여서 엄청 아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인들의 창작물들이 발표가 됩니다.
게중에 기억에 가장남는글이 있다면 전 전농의장님이셨다는 분의 임종 6개월전의 글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전하듯 쓰여진 글에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지적해 주는데 대략 일맥 상통하게 적어 본다면 " 생명활동을 한다는 것 그것 또한 자본의 논리이네.........농민들이 힘들게 농사를 짓는다고 그게 외국 농산물을 막을 수 있나? 그게 돼?" " 트랙터 투쟁을 하면 농기계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농민투쟁도 가진사람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 영농규모화 한다면 농촌에서 같이 먹고 살아야할 농민들의 일터를 빼앗는것이 아닌가? 농촌에서 그게 돼?"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뭐, 나는 좀 단순해서 이해하기에 좀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농민운동의 미래를 제시해야하는 물음들이었던 것 같았는데 친근하게 쓰여진 산문이라 기억에 남은 듯 합니다.
그리고 경북도연맹 의성여성농민회의 창작극 대장금도 9월 11일이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산지역 노래극단 희망새의 공연으로 농민문학의 밤 행사는 끝이나게 됩니다. 공연이후 희망새 홈피에 들어가 공연했던 사람들의 프로필 스토킹을 좀했다는...ㅋㅋㅋㅋ 희망새가 93년 생겼는데 단원들은 예상보다 젊었다는...ㅋㅋㅋㅋ
겨울이 되면 보통 지역에서 대구지역에서 진행되던 양심수 후원의 시와 노래의 밤이 생각납니다. 농민문학의 밤도 이후에 지속적으로 진행이 되어서 올해의 행사를 기념하는 전통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하기를 내심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