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사람
故 강희남 목사 영결식 엄수 "이명박 심판할 것"
참된
2009. 6. 11. 18:43
고 강희남 목사의 영결식이 명동 향린교회에서 마친후 참가자들이 서울광장 맞은편 덕수궁까지 행진하며 노제를 지냈다.ⓒ 민중의소리
故 강희남 목사 영결식 엄수 "이명박 심판할 것"
박준석 장명구 기자 민중의 소리
고 강희남 목사의 통일․민주사회장이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엄수됐다.
지난 6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란 글을 남기고 자결한 흰돌 강희남 목사의 영결식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300여명의 추모속에 거행됐다.
영결식에서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문규현 신부는 “일평생 의로운 길만을 걸었던 강희남 목사님은 외세에 시달리고 분단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아픔을 절절히 감당해오셨다”며 “이제는 자유로운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남과 북 이곳저곳을 다니시고 우리들에게도 민주와 통일을 이룰 힘을 주시라”고 추도했다.
문 신부는 이어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흰돌 강희남 목사님의 ‘입대신 몸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따라 더 이상 이땅에 서럽고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다같이 노력하자”며 “6월 항쟁의 거대한 물결 그 한가운데 장엄하게 부활하게 하소서...”라고 추도했다.
장례위원회 고문인 이종린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은 향을 피우고 절을 한 후 읽은 추도사에서 “강 목사는 진보적인 민주주의자였고 민족대단결과 자주정신을 강조하신 분”이라며 “그 뜻을 이어 민생파탄, 민주압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부정의 돌격대 이명박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강 목사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을 소개하며 “이 60자의 글씨에 목사님의 뜻이 담겨있다”며 “특히 ‘내치자’ 글귀를 가슴에 새기고 몸소 실천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고인과 한평생 통일운동을 함께해 온 장례위원회 고문인 박창균 목사는 “90평생 투쟁을 해온 그를 보내며 모두 다음과 같이 결의하자”며 “국가보안법 철폐와 한미간의 불평등한 관계 개선, 소파폐지, 미군철수 등을 위해 다같이 노력하자”고 간곡히 호소했다.
박 목사는 “강 목사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늘 배려하고 생각하는 사람.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 늘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 연방제 통일을 평생 소원으로 간직하고 투쟁한 친구 진정한 통일 운동가이다”라고 회고했다.
영결식은 한충목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의 각국에서 온 추도 내용 소개와 이기형 시인의 조시, 노래극단 희망새의 추모의 노래로 이어졌다.
이어 호상인 이석영 전북대 교수의 인사와 “이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목사를 받아주시고 남은 사람들이 그 뜻을 이어 열심히 싸우도록 해달라”는 서재일 한국기독교 총회장의 축도를 끝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영결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강 목사의 영정을 앞세우고 서울광장 맞은편 대한문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이동했다.
노제는 이수금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조사와 6.10 항쟁 22주년 맞이 결의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노제를 마친 고 강희남 목사의 유해는 화장을 위해 벽제 승화원으로 이동했다.
고 강희남 목사를 실은 운구차는 경찰 사이드카 2 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오후 4시경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장묘문화센터 화장장에 도착했다.
서용운 목사(전극산성교회)의 사회로 강 목사의 화장 예식이 진행됐다. 강 목사의 순탄하지 않았던 생과 위대한 죽음을 상징하 듯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로 시작하는 찬송가는 ‘숨이진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는 진리로다’로 마무리됐다.
서 목사는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라는 에스겔 37장의 성경말씀을 인용해 “희망과 부활의 말씀”이라며 “강 목사께서 못 다 이룬 역사가 부활하는 날이, 회복되는 날이 꼭 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고인을 기리는 민중가요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합창한 뒤, 화장장으로 강 목사의 운구가 들어가자 유족들을 비롯한 추모객들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고인의 셋째딸인 귀희씨는 "아버지 마음 다 알아요. 말 없이 가셨지만 가슴에 맺힌 한을"이라며 "아버지,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기도 했다.
고인의 육체는 길었던 그의 인생 여정과는 무관하게 두시간여도 채 안돼 한 줌의 재로 가족들 품에 안겼다.
화장을 마친 강 목사의 유골은 6시 15분경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했다. 당초 강 목사는 유골은 전주 납골당에 안치키로 했으나, 통일운동의 동지이자 친구인 문익환 목사 곁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모란 공원에 안치됐다.
고인의 유족들과 지인들은 전병생 목사의 사회로 납골당 앞에서 마지막 예배를 진행했다.
전 목사는 "(이명박 정부가)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민족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있다"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피를 흘릴 것인데, 강 목사는 이를 막기 위해 여러번 금식하며 민중을 깨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이어 "남북관계 파탄을 막기위해 마지막으로 의로운 결단을 하셨다. 위대한 죽음이다"라며 "삶도 위대했지만 죽음은 더 위대했다"고 끝내 울음을 쏟아냈다.
박상희 목사도 "불의 앞에서는 강직했으나,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자애로운 목사였다. 본인에게는 엄격했으나 우리들에게는 너그러웠고, 자신의 삶은 궁핍했으나 항상 우리를 돌봤다"며 "따뜻한 우리들의 사람들이 더 확산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5일장 내내 슬픔을 참느라 말조차 하지 못했던 한상렬 목사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노래로 추모했다. 한 목사는 "놓아라. 인생은 길가는 나그네일 뿐.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 삶과 죽음은 한가지려니. 이 원한 내려 놓아라"라는 노랫말 속에 고인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통일의 원로 강 목사는 수많은 지인들의 눈물 속에 마석 모란공원(납골당 C동 244호)에 영원히 잠들었다.
지난 6일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 잡을 주체가 없다. 제2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란 글을 남기고 자결한 흰돌 강희남 목사의 영결식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300여명의 추모속에 거행됐다.
고 강희남 목사 통일민주사회장 영결식에서 추도사 읽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민중의소리
고 강희남 목사 통일민주사회장 영결식ⓒ 민중의소리
영결식에서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문규현 신부는 “일평생 의로운 길만을 걸었던 강희남 목사님은 외세에 시달리고 분단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아픔을 절절히 감당해오셨다”며 “이제는 자유로운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남과 북 이곳저곳을 다니시고 우리들에게도 민주와 통일을 이룰 힘을 주시라”고 추도했다.
문 신부는 이어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흰돌 강희남 목사님의 ‘입대신 몸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따라 더 이상 이땅에 서럽고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다같이 노력하자”며 “6월 항쟁의 거대한 물결 그 한가운데 장엄하게 부활하게 하소서...”라고 추도했다.
장례위원회 고문인 이종린 범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은 향을 피우고 절을 한 후 읽은 추도사에서 “강 목사는 진보적인 민주주의자였고 민족대단결과 자주정신을 강조하신 분”이라며 “그 뜻을 이어 민생파탄, 민주압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부정의 돌격대 이명박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강 목사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을 소개하며 “이 60자의 글씨에 목사님의 뜻이 담겨있다”며 “특히 ‘내치자’ 글귀를 가슴에 새기고 몸소 실천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고인과 한평생 통일운동을 함께해 온 장례위원회 고문인 박창균 목사는 “90평생 투쟁을 해온 그를 보내며 모두 다음과 같이 결의하자”며 “국가보안법 철폐와 한미간의 불평등한 관계 개선, 소파폐지, 미군철수 등을 위해 다같이 노력하자”고 간곡히 호소했다.
박 목사는 “강 목사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늘 배려하고 생각하는 사람.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 늘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 연방제 통일을 평생 소원으로 간직하고 투쟁한 친구 진정한 통일 운동가이다”라고 회고했다.
정동영 의원이 고 강희남 목사 영결식에 참석했다.ⓒ 민중의소리
고 강희남 목사의 영결식이 10일 오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진행됐다.ⓒ 민중의소리
고 강희남 목사 영결식에서 눈물 흘리는 문정현 신부ⓒ 민중의소리
10일 오후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진행된 고 강희남 목사 영결식에 참석한 백기완 선생ⓒ 민중의소리
영결식은 한충목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의 각국에서 온 추도 내용 소개와 이기형 시인의 조시, 노래극단 희망새의 추모의 노래로 이어졌다.
이어 호상인 이석영 전북대 교수의 인사와 “이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목사를 받아주시고 남은 사람들이 그 뜻을 이어 열심히 싸우도록 해달라”는 서재일 한국기독교 총회장의 축도를 끝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영결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강 목사의 영정을 앞세우고 서울광장 맞은편 대한문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이동했다.
노제는 이수금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조사와 6.10 항쟁 22주년 맞이 결의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노제를 마친 고 강희남 목사의 유해는 화장을 위해 벽제 승화원으로 이동했다.
고 강희남 목사를 실은 운구차는 경찰 사이드카 2 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오후 4시경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장묘문화센터 화장장에 도착했다.
서용운 목사(전극산성교회)의 사회로 강 목사의 화장 예식이 진행됐다. 강 목사의 순탄하지 않았던 생과 위대한 죽음을 상징하 듯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로 시작하는 찬송가는 ‘숨이진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는 진리로다’로 마무리됐다.
서 목사는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라는 에스겔 37장의 성경말씀을 인용해 “희망과 부활의 말씀”이라며 “강 목사께서 못 다 이룬 역사가 부활하는 날이, 회복되는 날이 꼭 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고 강희남 목사가 10일 고양 장묘문화센터에서 화장된 뒤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됐다.ⓒ 민중의소리
고인을 기리는 민중가요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합창한 뒤, 화장장으로 강 목사의 운구가 들어가자 유족들을 비롯한 추모객들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고인의 셋째딸인 귀희씨는 "아버지 마음 다 알아요. 말 없이 가셨지만 가슴에 맺힌 한을"이라며 "아버지,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기도 했다.
고인의 육체는 길었던 그의 인생 여정과는 무관하게 두시간여도 채 안돼 한 줌의 재로 가족들 품에 안겼다.
화장을 마친 강 목사의 유골은 6시 15분경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했다. 당초 강 목사는 유골은 전주 납골당에 안치키로 했으나, 통일운동의 동지이자 친구인 문익환 목사 곁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모란 공원에 안치됐다.
10일 고양시 덕양구 장묘문화센터에서 화장을 마친 고 강희남 목사의 유해가 마석 모란공원 안장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고인의 유족들과 지인들은 전병생 목사의 사회로 납골당 앞에서 마지막 예배를 진행했다.
전 목사는 "(이명박 정부가)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민족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있다"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피를 흘릴 것인데, 강 목사는 이를 막기 위해 여러번 금식하며 민중을 깨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이어 "남북관계 파탄을 막기위해 마지막으로 의로운 결단을 하셨다. 위대한 죽음이다"라며 "삶도 위대했지만 죽음은 더 위대했다"고 끝내 울음을 쏟아냈다.
박상희 목사도 "불의 앞에서는 강직했으나,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자애로운 목사였다. 본인에게는 엄격했으나 우리들에게는 너그러웠고, 자신의 삶은 궁핍했으나 항상 우리를 돌봤다"며 "따뜻한 우리들의 사람들이 더 확산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5일장 내내 슬픔을 참느라 말조차 하지 못했던 한상렬 목사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노래로 추모했다. 한 목사는 "놓아라. 인생은 길가는 나그네일 뿐.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 삶과 죽음은 한가지려니. 이 원한 내려 놓아라"라는 노랫말 속에 고인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통일의 원로 강 목사는 수많은 지인들의 눈물 속에 마석 모란공원(납골당 C동 244호)에 영원히 잠들었다.
고 강희남 목사의 유족들이 화장을 앞두고 오열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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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9-06-10 16:17:33 ·최종업데이트 : 2009-06-11 09:2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