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기고] 당신과 나, 지금 전쟁 중이신가(2010.4.14)

참된 2010. 5. 15. 23:30

       

 

 

 

 

당신과 나의 전쟁

[기고] 당신과 나, 지금 전쟁 중이신가

서해식(르포작가)  울산노동뉴스   2010-04-14 오후 5:22:11

 

‘전쟁이라는 말은 싫어요. 꼭 내가 살인자가 된 것 같아요.’

 

꿈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화를 보고난 후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 잠든 새벽이었다. 누구일까. 모습은 없고 목소리만 들리던 남자를 찾아 아직 술이 덜 깨어 아픈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누구인가? 전쟁이라니? 이렇게 아픈 소리를 담고 있던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생각을 하던 중 어느 새 정신을 놓고 나는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아, 이번엔 그가 보였다. 함께 싸운 동지들을 다 죽게 만든 것 같아서, 전투의 수장이었던 자신이 꼭 살인자가 된 것 같아서, 제발 전쟁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 달라던 그 남자. 그는 붉어진 눈에 눈물을 담고 있던 한상균 지부장이었다.

 

‘어리석은 사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를 보며 떠올린 말이었다. 지부장이 되어 할 일이라곤 죽도록 싸우는 일과 감옥 갈 일뿐, 그 뻔한 날들을 눈앞에 보고도 그는 덜컥 쌍용차의 지부장 자리를 받아 들였다. 어리석은 사람. 좋은 세월을 누릴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는 무슨 심산으로 저 자리에 올랐을까, 아니지, 계산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저런 자리엔 오르지 않지. 정말 바보구나, 답답한 바보구나.

 

2006년과 2009년, 공장 안에서 함께 족구를 하던 노동자들과, 쪽팔려서 공장 근처에서는 살기 싫다며 이사를 간다는 해고된 노동자 사이에는 시간이 박혀 있다. 사람이 잘려 나가고 다치고 죽고 쓰러진, 끝끝내 마음에 깊은 병을 안고 눈빛마저 달라진 사람들. 그동안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노조 간부의 젊은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 소리내어 울었던 한상균 지부장의 눈을 카메라가 담았다. 집요하게 쫓아가는 카메라의 렌즈가 그의 눈을 담을 때도 그는 밀쳐내거나 눈을 감지 않았다. 쭈그리고 앉아 그는 울고 있었다. 오, 필승 코리아가 공장 안으로 후벼 파고 들어온다. 오늘만이라도, 단 하루라도, 오 필승 코리아를 멈출 수 없냐고 항의했지만, 새파란 젊은 여인이 관 속으로 들어갈 때도, 영안실로 달려간 남편의 오열이 관을 덮을 때도, 오 필승 코리아는 공장 안으로 독가스처럼 퍼지고 있었다. 사람은 얼만큼 더 단련되어야 이런 잔인함 앞에서도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가. 미치지 않기 위해 봉합해야 했던 기억들을 영화는 잔인하게 풀어 놓는다. 스크린 위에서 현실이 되어 돌아온 시간들, 아, 어쩌란 말이냐.

 

 ‘네 동료들이 죽었어, 이 개새끼들아.’

 

산자들이 죽었다. 인간의 심장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양심의 압박 때문이었는가. 연일 계속되던 회사쪽 데모에 동원된 산자들이 죽었다. 죽은 자들을 향해, 너희들 때문에 회사가 망하니 빨리  파업을 멈추라던, 회사의 나팔 소리에 불려나온 산자들이 죽었다. 살아남은 산자들은 다시 양떼처럼 회사의 나팔소리를 따라 움직인다. 산자들의 행렬을 카메라가 쫓아가자 그들은 얼굴을 가린다. 작업복 잠바를 뒤집어 쓰기도 하고 회사에서 배포한 유인물을 접어 얼굴을 가린다. 끝까지 쫓아간 카메라가 ‘무슨 생각이 드느냐’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물어보지만 단 한마디의 말도 뱉아내지 못한다. 괴로움이 극하면 독이 서린다. 바닥을 친 양심이 한계에 달했을 때는 그들은 스스로 무장한다. 살기 위해 죽은자들을 두들겨 패고 욕을 퍼붓는다. 모두가 살자고 나선 길이 아닌가. 홀로 살아남는 길을 선택한 당신들을 욕하진 않겠다. 하지만 원망스럽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는 이 기억들을 무겁고 두려워서 어찌 지고 가실 건가. 빨라진 라인의 속도에 조립품처럼 몸을 맞추며 오늘 하루도 고단했을 당신들. ‘힘들다’ 한마디면 ‘나가라’는 협박으로 당신의 목을 누르는 이 공장이 그래도 산자여서 행복하신가.

 

‘아아, 이 씨발...... .’

 

‘당신과 나의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객석에서는 무성음의 옅은 비명 소리가 툭툭 터져 나온다. 구사대와 전경들이 난입한 공장 안, 방패로 찍히고 꿇어앉은 채로 전경들의 발길질을 온몸에 받고 있던 노동자들. 다시 현실이 되어 돌아온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다시 눈물을 흘리고 주먹을 쥔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 당신과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길 위에 사람이 서 있다. 또렷이 정면을 응시한 채 스크린 밖의 사람들을 응시하는 사람들. 산자였으나 77일의 파업이 안겨준 ‘해고’라는 선물을 안고, 한달 13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하루 열두시간을 붉은 돼지고기를 썰던 사람, ‘노동 유연화’라는 말은 자본가의 입장을 담은 말일 뿐, 노동자에게는 삶이 파괴되는 그 나쁜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 그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당신과 나’는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 지금 전쟁 중이신가. 당신이 죽었는가, 내가 죽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