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영화

[인터뷰] 생과 사를 넘나든 ‘쌍차’ 투쟁을 기록한 서세진 감독(09.11.12)

참된 2010. 5. 15. 23:18

저 달이 차기 전에 공장에서 나갈 수 있었을까?

[인터뷰] 생과 사를 넘나든 ‘쌍차’ 투쟁을 기록한 서세진 감독

이동권 기자  suchechon@voiceofpeople.org   민중의 소리  2009-11-12 14:32:27
 

 

어둑어둑한 가운데서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꿈틀거림이 어정거렸다. 그것은 윤곽도 형태도 없었고, 거칠다거나 곱살스럽다거나 말끔하다거나 고상하다거나 하는 세세한 감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요원하게만 생각했던 일들이 눈앞에서 이뤄졌을 때나 경험할 수 있는 흥분이었고 모호한 것, 애매한 것, 불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진실’이 주는 파동이었다. 밤새 공장 옥상을 지키며 달이 차오르는 모습을 그토록 애타게 바라보던 눈동자.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등에 지고 지그시 깨물던 아랫입술. 험상궂게 찢어지고 도도록이 부어오른 상처를 참아내기 위해 힘껏 찡그린 눈썹. 그렇게 결단과 긴장이 뒤섞인 사람들의 얼굴들. 나무랄 데 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도 그것이 지닌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루하고 혐오감을 주었던 영화들과 무엇이 다른지 너무도 확연했다. 서세진 감독이 무엇보다도 힘주어 강조했던 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쌍용자동차 조합원”이며 “그분들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는 그 얘기가 아직까지도 귓가에 새록새록 떠올라 쟁쟁하다.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민중의소리



 
 
서 감독을 움직이는 에너지

서세진 감독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꿈을 물었을 때였다. 꿈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인간의 가슴 밑바닥까지 흔들어놓는 것일까. 근심거리일까? 아니면 의문에 싸인 것일까? 하지만 빳빳하게 오그라들던 그의 얼굴에서 한 순간 ‘환희’ 같은 것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는 영화가 없었습니다. 좋아했을 뿐이죠. 나이가 들면서, 저의 일생을 완전하게 맡길만한 일을 고민하면서부터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단지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영화판에 뛰어든 게 아니었거든요.”

현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거나 외국에서 공부했다. 아니면 영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이나 영화계에서 전전하다 감독이 됐다. 하지만 서 감독의 경우는 다르다. 독학으로 영화를 배웠고,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드는 법을 습득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과 노력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메가폰까지 잡게 됐다. 참으로 특이한 ‘입봉’ 경력이다.

서 감독은 남다른 감수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밖으로 쏘다니면서 방랑하거나 자신조차 잃어버린 채 뭔가를 찾아 방황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거부할 수 없는 것에 이끌리는, 그러니까 사랑이나 유희 그 밖의 일 모두 거기에서 전염되고, 깊게 파고들 수밖에 없는 순수한 영혼을 지녔다.

“감독을 하기 이전부터 제가 논리적인 일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감성적인 것이 오히려 적성에 맞았고, 그런 것들을 좋아했죠. 책을 보더라도 이론서보다는 소설이나 시를 많이 읽었고요……. 제 안에 잠재된 감성적인 토대들은 영화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스스로 예술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요.”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민중의소리

 
 
 
서 감독은 자신을 표현하는 얘기들이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잠시 어린아이처럼 껄껄거리며 웃다 다시 입을 열었다. 꿈은 역시 아기자기한 대화, 거듭거듭 새로워지는 화제를 부른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교과서처럼 보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1925년 작 <전함 포템킨>, 1941년 작 <시민 케인>, 1960년 작 <싸이코> 같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은 저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전통적인 영화 기법을 배우는 정도였죠. 오히려 저는 <어둠 속의 댄서> 같은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또 …….”

잠시 <어둠 속의 댄서>를 소개하자면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어머니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병을 숨기고 공장에서 일하다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당하는 이야기인데, 어머니는 그런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낙천적인 마음으로 살다 생을 마감한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영화감독을 꿈꾸던 한 젊은이의 스무 살적 감수성이 살포시 엿보인다. 이로부터 그는 삶에 대한 열렬한 애착과 경건함 속에서 야무지게 양심을 다지며 단련해왔을 것이고, 그 짜릿짜릿한 추억들을 두터운 벗 삼아 감독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제 감독이 된 그는 또 어떤 꿈을 꾸며 불혹을 맞이할까. 영화감독이라면 떳떳한, 아니 뭔가 족적을 남길만한 문제작을 만들고 싶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면서 늘 꿈꿔왔던 것이 있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펑펑 우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모습에 자기 자신이 동화돼서 나오는 눈물, 그런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를 만드는 창작의 과정, 과히 만만치 않다. 끊임없는 추상을 현실화하고, 감각적인 것을 동시에 이미지로 재건하는 작업. 생각만 해도 웃음이 싹 가신다.

“사람들은 하나의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기는 힘듭니다. 주인공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삶이 보이고, 주인공의 사랑이나 분노가 복합돼 자신과 일체가 될 때 비로소 카타르시스가 일어납니다. 이런 작업, 굉장히 힘든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낙천적으로 생각하렵니다. 일면 제 성격도 도움이 될 듯 싶고요. 저는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바로 표현합니다. 자기 성격을 감출 줄 모릅니다. 바로 풀고, 바로 까먹기 때문에 힘들어 하다가도 자다 일어나면 내가 힘들었나 하고 맙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힘은 들었는데, 그것이 참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정작 저를 괴롭히는 것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창작에 대한 욕구가 꺾일 때입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만들고 싶은 영화를 못 만들면 정말 힘들고, 후회가 될 것 같습니다.”

형언하기 어려운 포부. 그러나 조용하고 확고하게 다가오는 꿈. 시사회 준비 때문에 얼굴빛은 어두워 보였지만 오관에서는 명료하고 단단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서 감독 자신을 움직이는 에너지 같은 것이.

쌍차 도장공장에 잠입한 이유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는 격렬한 마력으로 마음을 빼앗았다. 맑은 눈물이 누룩냄새처럼 소복이 피어올라 마음을 적셨다. 방패를 내리찍는 포악한 소리에서부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예민한 소리까지 모든 것을 듣도록 충동질했고, 이미 알고 있던 것과 점점 알게 되는 것, 볼 수 있었던 것과 볼 수 없었던 것을 서서히 결합시키면서 감동의 도가니로 빨려들게 했다.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민중의소리

 
 
서 감독도 이 영화를 편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 이를테면 슬픔이나 분노 같은 것이 끊이지 않았을 듯싶다.

“매일매일 마주치는 갈등, 나갈 것인가 아니면 남을 것이냐는 선택의 순간에서도 자신보다는 가족을 그리고 동료를 걱정하는 노동자의 모습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또 기자들이 찍었던 영상의 10분의 1밖에 담지 못한 현실이 아쉽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이 영화는 경찰이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을 완전히 봉쇄한 뒤 그곳에 갇혀 매일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야했던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그렸다. 이 영화를 보면 노동자들이 왜 생명을 걸고 처절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77일 동안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옥쇄파업을 하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다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투쟁의 껍질만 아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싸웠으며, 무엇을 갈망하고 희망했는지는 모릅니다. 공장에 잠입한 기자들을 통해서 조금씩은 나오기는 했지만 그 안의 생활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처음 쌍용자동차가 파업했을 때 노동자들의 투쟁과 생활은 쉽게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누구나 자유롭게 공장에 들어갔고, 쉽게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이 봉쇄되면서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고 그 곳에 있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서 감독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공장안으로 기자들을 잠입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진실을 알리고, 그 진실들을 하나로 엮어내야 한다는 사명감, 쌍용자동차 투쟁이 정리해고가 만연한 한국사회에 경종이 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히 용기였고, 힘든 결단이었다.

“조합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것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물론 이 싸움이 얼마나 길어질지, 이길지 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싸움을 과감 없이 그려내는 일도 중요했고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완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일매일 가장 걱정된 것은 기자들이 다치지 않았을까 아니면 고립감, 불안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였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늘 긴장했죠. 그래서 전화를 할 때마다 뭘 찍었냐보다는 다치지 않았느냐, 몸은 어떠냐를 가장 먼저 물었습니다.”

옥쇄파업이 끝난 뒤 공장에서 나온 기자들은 그 자리에서 연행,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설마설마 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제 끝났구나, 어쨌든 살아나왔구나 다행스러웠지만 당장 볼 수 없어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눈앞이 먹먹했죠.”

미안하고 고맙다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를 보고 있으면 ‘정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편집의 정수를 보는 느낌이다. 문득 이 영화를 편집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창작은 고된 피로를 동반하고, 그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피로가 겹겹이 쌓이게 되지 않은가.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민중의소리

 
 
 
“편집 작업만 2달 넘게 걸렸습니다. 실제로 봉쇄된 곳에서 촬영한 필름이어서 촬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거든요. 정말 과정 과정이 힘들었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너무도 많은데 그 이야기들을 넣지 못해 아쉽고, 그래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미안합니다."

어떠한 대작을 완성하고 나서도 아쉬움이 들기 마련이다. 조금만 조금만 하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후반 작업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현장 소리를 잘 잡고, 화면을 보정하는 일입니다. 다큐영화에 맞게 감정 기복에 따라 음악을 적절하게 곁들이고 싶은데, 시간도, 여력도 없네요. 시사회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젠 이것으로 만족해야죠.”

용기와 열정,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그 진정성까지 모두 다 모아내 만든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 서 감독의 뇌리에서 맴도는 에필로그를 물었다.

“옥쇄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평가할지 그게 정말 걱정됩니다. 혹시 그분들의 입장을 왜곡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그 분들의 진정성을 허술하게 다루지 않았을까,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그분들이 영화를 보고 잘 그려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제일 듣고 싶습니다. 또 감사의 말씀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고생했지만 그 중에서도 힘들어도 티 안내고 촬영해줬던 홍민철 기자에게 고맙고, 또 임신한 몸으로 2박3일 동안 날을 새면서 구성작업을 도와준 저의 영원한 친구 이정미 미디어 보프 국장한테도 고맙습니다. 후반작업 총괄 맡는 김도균 피디에게도 고맙고요. 그렇지만 가장 고마운 분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입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동권 기자 suchechon@voiceofpeop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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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 2009-11-12 14:32:27
  • 최종업데이트 : 2009-11-12 16:5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