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전쟁’ 태준식 감독, 2009년 평택 그곳에 인권은 없었다
-극장 개봉 대신 공동체 상영으로 관객들과 만난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주위에서 개봉 여부를 묻는데, 극장 개봉이라는 형식보다는 또 다른 형식의 상영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었다. 물론 극장도 (이 작품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고.(웃음) 그래도 쌍용자동차 투쟁이 당시 사회적으로 큰 화제였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상영 문의가 온다. 노동에 관한 작품이기 때문에 회사의 노동조합이나 시민 단체, 학생들에게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샘터분식>(2008) 이후 다시 ‘노동’에 주목했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2000년대 초반의 파업들은 ‘투쟁’만 강조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노동운동에 한계가 있었다. 외부의 시선도 좋지 않았고. 하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들은 자기들만 이익을 얻고 끝내는 그런 투쟁이 아니라 같이 살아보자고 싸운 것이다. 거기서부터 이 싸움의 성격이 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의미가 있던 싸움이었고 사회적으로는 또 다른 지점에서 평가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당시 현장 촬영이 무척 까다롭고 위험했을 텐데, 변수는 없었나?
투쟁 당시에는 그곳에 직접 가지 못했다. 공장 안의 화면들은 쌍용자동차 간부 분들이나 미디어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촬영한 거다. 나는 그 분들에게 촬영 테이프를 받아서 편집해 이야기를 만든 거다. 거의 250개 정도의 촬영 테이프를 수집했는데, 그 테이프를 전부 다 보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연출자로서 화면을 직접 찍지 못해 아쉬웠겠다.
당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허가를 받은 미디어 단체나 영상 활동가 외에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없었다. 허가를 받은 사람들도 몰래 들어갔다. 보수 언론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싸움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어떻게 될까 마음만 졸이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더라. 마침 이상욱 프로듀서에게 제안이 와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시의 상황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자극이 됐다.
-그렇다면 편집하면서 작품의 방향을 고려했을 텐데, 어디에 무게를 뒀나?
보통 노동 다큐멘터리에서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포장하려고 노력하는 데, 이번에는 그런 점을 배제했다. 결과적으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상황이 비극적이긴 하지만 그 면만 보여주는 것이 의도나 목적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사실을 전달하려고 했다.
-작품에 실제 해고된 노동자의 인터뷰가 들어간다. 그분들에게 과거에 대한 기억을 요구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물론 힘들었다. 그 사람들한테는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거잖나. 이번에 인터뷰를 하면서 한 분이 그러더라. 어느 날 갑자기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솔직히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말문이 막혔다. 그분은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 당장 돈이 나올 데가 없는 거다. 특히 이번에 노동자들 인터뷰를 하러 다니면서 이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자기 신념이 투철하더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파업 이후’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작년 12월부터 평택에 자주 갔는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죽은 자의 도시’였다. 도시 자체가 완전히 침체돼 있어서 해고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이웃들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굉장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 지역에서는 재취업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실업 급여가 끝나고 나면 삶이 막막해지는 거다. 대부분의 인생을 공장에서 보내온 사람들이 공장에서 쫓겨나면 뭘 할 수 있겠나? 공장이 작살나니 도시 전체가 작살나기 직전까지 간 것이다.
-흔히 해고를 ‘사회적 살인’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가 결국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경우인가?
노사 협상이 끝나고 각 파업에 참여한 400여 명한테 1인당 300만 원 정도씩 들어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공장은 시설물에 보험을 들었는데, 그 보험회사가 노동조합에 40억 원 정도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노동조합 자체를 공장에서 몰아내기 위한 계획이라고 그러더라. 이 사람들에게 수로를 터주고 살 길을 만들어주면 아마 이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을 텐데 완전히 못살게 만드는 거다.
-제목에서 ‘투쟁’이 느껴진다. 어떻게 짓게 된 건가?
작업할 때 보통 제목을 정하고 영화에 들어간다. 이번에도 처음부터 그랬다. 어쩌면 이 제목 안에 이야기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쟁터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경우엔 더 그랬던 것 같다.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과 나의 전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꾸준히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이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지고 싶었나?
노동자가 있어야 기업이 있지 않느냐는 점을 반문하고 싶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결국 해직되었지만 거의 몇 달 동안 대한민국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 기업으로부터 강제로 해고당하는 일, 또는 구조조정에 의해서 비정규직으로 밀리는 상황 자체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합리한 것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알렸다고 본다. 나는 그 분들이 던진 메시지를 받아서 사회에 널리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기업이 정말 고귀하게 보존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사회를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고 본다. 본인이 정의하는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다큐멘터리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실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사람을 찍는 거고, 세상을 찍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의 일들을 연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를 향해 발언하고, 구성원들을 쿡쿡 찌르면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기능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정치적으로 소통을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앞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다음 작품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님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작년에 기획에 들어가서 지금도 계속 찍고 있는데, 올해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여서 올해 안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소선 여사는 지금 몸이 많이 쇠약해진 할머니지만 40년 동안 아들의 정신을 이어서 계속 싸우고 있는 대단한 분이다.
주위에서 개봉 여부를 묻는데, 극장 개봉이라는 형식보다는 또 다른 형식의 상영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었다. 물론 극장도 (이 작품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고.(웃음) 그래도 쌍용자동차 투쟁이 당시 사회적으로 큰 화제였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상영 문의가 온다. 노동에 관한 작품이기 때문에 회사의 노동조합이나 시민 단체, 학생들에게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샘터분식>(2008) 이후 다시 ‘노동’에 주목했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2000년대 초반의 파업들은 ‘투쟁’만 강조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노동운동에 한계가 있었다. 외부의 시선도 좋지 않았고. 하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들은 자기들만 이익을 얻고 끝내는 그런 투쟁이 아니라 같이 살아보자고 싸운 것이다. 거기서부터 이 싸움의 성격이 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의미가 있던 싸움이었고 사회적으로는 또 다른 지점에서 평가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당시 현장 촬영이 무척 까다롭고 위험했을 텐데, 변수는 없었나?
투쟁 당시에는 그곳에 직접 가지 못했다. 공장 안의 화면들은 쌍용자동차 간부 분들이나 미디어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촬영한 거다. 나는 그 분들에게 촬영 테이프를 받아서 편집해 이야기를 만든 거다. 거의 250개 정도의 촬영 테이프를 수집했는데, 그 테이프를 전부 다 보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연출자로서 화면을 직접 찍지 못해 아쉬웠겠다.
당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허가를 받은 미디어 단체나 영상 활동가 외에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없었다. 허가를 받은 사람들도 몰래 들어갔다. 보수 언론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싸움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어떻게 될까 마음만 졸이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더라. 마침 이상욱 프로듀서에게 제안이 와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시의 상황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자극이 됐다.
-그렇다면 편집하면서 작품의 방향을 고려했을 텐데, 어디에 무게를 뒀나?
보통 노동 다큐멘터리에서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포장하려고 노력하는 데, 이번에는 그런 점을 배제했다. 결과적으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상황이 비극적이긴 하지만 그 면만 보여주는 것이 의도나 목적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사실을 전달하려고 했다.
-작품에 실제 해고된 노동자의 인터뷰가 들어간다. 그분들에게 과거에 대한 기억을 요구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물론 힘들었다. 그 사람들한테는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거잖나. 이번에 인터뷰를 하면서 한 분이 그러더라. 어느 날 갑자기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솔직히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말문이 막혔다. 그분은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 당장 돈이 나올 데가 없는 거다. 특히 이번에 노동자들 인터뷰를 하러 다니면서 이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자기 신념이 투철하더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파업 이후’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작년 12월부터 평택에 자주 갔는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죽은 자의 도시’였다. 도시 자체가 완전히 침체돼 있어서 해고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이웃들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굉장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 지역에서는 재취업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실업 급여가 끝나고 나면 삶이 막막해지는 거다. 대부분의 인생을 공장에서 보내온 사람들이 공장에서 쫓겨나면 뭘 할 수 있겠나? 공장이 작살나니 도시 전체가 작살나기 직전까지 간 것이다.
-흔히 해고를 ‘사회적 살인’이라고 하는데, 이번 사태가 결국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경우인가?
노사 협상이 끝나고 각 파업에 참여한 400여 명한테 1인당 300만 원 정도씩 들어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공장은 시설물에 보험을 들었는데, 그 보험회사가 노동조합에 40억 원 정도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노동조합 자체를 공장에서 몰아내기 위한 계획이라고 그러더라. 이 사람들에게 수로를 터주고 살 길을 만들어주면 아마 이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을 텐데 완전히 못살게 만드는 거다.
-제목에서 ‘투쟁’이 느껴진다. 어떻게 짓게 된 건가?
작업할 때 보통 제목을 정하고 영화에 들어간다. 이번에도 처음부터 그랬다. 어쩌면 이 제목 안에 이야기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쟁터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경우엔 더 그랬던 것 같다.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들만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과 나의 전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꾸준히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이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지고 싶었나?
노동자가 있어야 기업이 있지 않느냐는 점을 반문하고 싶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결국 해직되었지만 거의 몇 달 동안 대한민국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 기업으로부터 강제로 해고당하는 일, 또는 구조조정에 의해서 비정규직으로 밀리는 상황 자체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합리한 것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알렸다고 본다. 나는 그 분들이 던진 메시지를 받아서 사회에 널리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기업이 정말 고귀하게 보존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사회를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고 본다. 본인이 정의하는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다큐멘터리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실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사람을 찍는 거고, 세상을 찍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의 일들을 연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를 향해 발언하고, 구성원들을 쿡쿡 찌르면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기능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정치적으로 소통을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앞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다음 작품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님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작년에 기획에 들어가서 지금도 계속 찍고 있는데, 올해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여서 올해 안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소선 여사는 지금 몸이 많이 쇠약해진 할머니지만 40년 동안 아들의 정신을 이어서 계속 싸우고 있는 대단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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