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스크린 앞에 관객이 앉으면, 그 다음은 자신있다"
[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작 '저 달이 차기 전에' 서세진 감독
쌍용자동차 파업을 다룬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가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출품됐다. 시사회가 열리기 전부터 영화제 측에서 관심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영화를 연출한 서세진 감독은 “후반 작업을 하던 중에 (영화제 측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영화제 출품은 보통 영화 제작사나 감독이 한다. 영화제 측에서 먼저 요청하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란다. 서 감독은 수정 중인 ‘미완성 본’을 영화제 측으로 보냈다. 영화제 측에서는 다시 ‘완성본’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고, 완성본을 본 후에 출품을 최종 확정했다고 한다.
영화를 연출한 서세진 감독은 “영화계의 공통된 반응은 ‘노동자 영화’라는 선입견을 깨는 작품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서세진 감독의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가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본선에 출품됐다.ⓒ 민중의소리
선입견의 영향은 생각보다 강하다. 배급사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영화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선뜻 배급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 선입견 때문이다. ‘노동자 영화’ ‘노동 다큐멘터리’ 라는 장르가 전해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상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제에 출품되지도 않았던 다큐영화가 배급망을 탄 경우는 드물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은 그런 측면에서 <저 달이 차기 전에>가 대중적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 감독은 “관객들이 스크린 앞에 앉는 데까지 어렵지, 앉고 나면 어느 영화보다 좋은 평을 들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이 영화는 슬픈 영화”라고 잘라 말했다. 영화는 파업 중인 쌍용자동차 공장에 잠입해 촬영한 2주간의 필름으로만 만들었다. 그 이외의 영상은 없다. 다른 설명도 없다. 오직 그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더욱 슬프다.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이 눈물을 흘린다. 벌써 2만 명 가까운 관객이 공동체 상영을 통해 영화를 봤는데 그 중에는 이른바 ‘진보 활동가’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많았다.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너무 절망적이고 슬픈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단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서 감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바로 그 지점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슬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그저 영화 속에서, 혹은 평택 어디에선가 벌어졌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직면했던 현실은 바로 내일 관객들이 그대로 당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해고 통보를 받기 전에는 관객들과 똑같이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장인 대다수가 오늘도 ‘해고’의 위험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슬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 속 노동자들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당할 수 있는 현실이라고 감정이입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싸움이 진행형이며 희망이 있다고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서 감독은 “희망은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그토록 외치고 싶었던 한 마디였다고 한다. “함께 살자.” 서 감독은 “이 한 마디가 동의된다면, 희망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자체가 워낙 사회적 파장이 있던 데다 현장에 잠입해 촬영한 필름으로 만들었다니 영화계의 관심도 높았다. 영화를 본 영화계 인사들의 평가는 아주 좋았다. MK픽쳐스 이은 대표는 일반적인 노동자 영상물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봤다가 놀랐단다. 보기 드문 노동자 영화였다는 게 그의 평가. 영화배급사 전진 김남수 대표는 “노동자 영화라는 프레임을 깨는 홍보가 필요할 것 같다”며 “사람들이 보면 좋아할 것 같은데 문제는 보기 전까지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서 감독에게 “보고 나면 당신의 왼쪽에 있는 사람을 안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멘트를 공식 홍보 문구로 사용해도 좋다고 전했다.
서세진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는 데 어려울 수 있지만, 보고 나면 보기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민중의소리
따미픽쳐스에서는 이번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장다큐멘터리로 지난 해 가장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도 높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관객 뿐 아니라 국내외 배급사들과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서 감독은 전했다.
서 감독은 “쌍용자동차 문제, 정리해고의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거니와 현장 깊숙이 들어가 촬영해왔던 우리들의 활동이 인정받는 기회”라고 이번 영화제 출품의 의의를 설명했다. 서 감독은 앞으로 극영화를 제작할 계획이긴 하지만 “현장 촬영은 우리의 본업”이라고 말했다.
영화제를 앞둔 서 감독은 영화에 큰 자신감을 내비쳤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한 마디를 했다.
“일단 관객들이 보면, 그 다음은 자신 있다.”
<김동현 기자 mailto@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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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 2010-03-25 13:30:57
- 최종업데이트 : 2010-03-25 13:43:13